시골 마을 산밑에는 작은 우물이 하나 있다. 지금은 겨우 형태만 남아 초라하기 그지없지만, 한때 이 우물은 동네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던 귀한 샘이었다. 식수 한 모금조차 허투루 할 수 없던 섬마을에서, 이 물은 싱겁지 않은 꿀맛 같은 축복이었다.
산 아래의 샘과 동네 아래 깊은 우물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공동의 샘터였다. 어떤 집은 마당 한켠에 작은 샘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바닷가 가까운 아래 샘물은 약간 싱거운 맛이 났고, 산밑 샘에는 바위 틈에서 스며 나온다는 이야기만 전해졌다.
텅 빈 통에 물을 채우는 일은 우리의 일상이었다. 물이 귀하니 샘물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간들거리며 돌아오면, 흔들린 탓에 반은 쏟아지고 병아리 눈물만큼 남은 물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여러 형제가 힘을 모으면 금세 다시 채워졌다. 그때는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다니느라 키가 자라지 않는다며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옆집 아줌마는 명절이면 샘가에 음식을 차려놓고, 이 샘이 마르지 않도록 누군가에게 빌었다. 태풍이 지나가 샘이 흐려지면 동네 사람들은 발벗고 들어가 샘을 푸고 청소하며 정성껏 돌보았다. 빨래도 하고, 때로는 달빛에 의지해 물을 기르는 밤도 있었다.
달빛 고요한 어느 밤, 물을 길러간 아낙 뒤를 따라온 것 같다는 오싹한 이야기들이 소문처럼 돌았다. 그 말이 퍼진 뒤 나는 샘터 근처도 가지 않았다. 심지어 누군가가 맛있는 샘물을 못 먹게 하려고 회꽂이를 한다는 속된 소문까지 나왔었다. 생명줄처럼 받들던 샘물이 부정탈까 봐 걱정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그 샘터를 돌보던 아줌마도, 그 물을 길어 쓰던 사람들도 모두 떠나고 없다. 그래서인지, 샘터는 더욱 초라해 보인다. 수도물이 철철 흐르는 시대가 되었으니, 샘이 잊히는 것도 당연한 일일까. 생수마저 사 먹는 요즘인데도, 가끔 고향 샘물의 달고 맑은 맛이 문득 그리워진다. 그 맛은 여전히 마음 한켠에서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