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속도가 버거운 사람들

by 자그노기

“나는 집에 있는 게 제일 편해”

지인이 어느 날 아무렇지 않게 건넨 이 말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사람들은 여행을 꿈꾸고, 주말이면 멀리 떠나는 걸 즐거움으로 여기지만, 지인에게 세상은 생각보다 조금 빠르고, 조금 흔들리고, 조금 더 버겁다.


지인은 오래전부터 멀미가 심했다. 차만 타면 속이 울렁이고, 표정이 일그러지며 짜증 섞인 말투가 튀어나와 가족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여행은 설렘보다 눈치와 불편함으로 끝나기 일쑤였다고 한다.


이런 것도 유전이 되는 걸까. 지인의 엄마 역시 멀미가 심해 집 밖으로 한 걸음을 떼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했고, 지인의 손녀도 차에만 타면 어지럽고 미식거림을 참지 못했다.

“좋은 건 안 닮고 이런 것만 닮아서 어떡하나…”

지인이 툭 내뱉은 넋두리 속에는 오래 묵은 자책이 배어 있었다. 남들은 별일 아니라고 웃어넘기는 불편함이, 어떤 이에게는 ‘나만 이상한 사람인가’ 하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도 그 마음을 이해한다.

우리 엄마도 멀미가 심했다. 완행버스 특유의 기름 냄새는 비위를 흔들고, 비포장 자갈길은 사람 몸을 흔들어놓았다. 서울 딸집에 올라갈 때면 “생쌀을 씹으면 멀미가 멎는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 하나에 기대어 반초 죽음이 되어 도착하곤 했다. 나 역시 엄마 옆에서 덩달아 생쌀을 씹던 기억이 있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도로는 훨씬 더 매끄럽고, 차도 조용하고 편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인이 여전히 울렁임을 견디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저릿해진다. 누구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고통의 반복일 수 있으니까.


“집에 있는 게 편해. 어디 가면 힘만 들어.”

지인의 말은 변명도 투정도 아니었다. 세상의 흔들림을 온몸으로 버티며 살아온 사람이 내뱉는, 아주 조용한 고백이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누군가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지친다.

그런 사람에게 집이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세상의 흔들림이 멈추는 유일한 자리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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