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릇의 새해

by 자그노기

“새해 첫날엔 무조건 떡국이야?”

그렇게 말해 놓고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는 왜 해마다 떡국을 먹을까. 언제부터 이 하얀 국이 새해의 얼굴이 되었을까.


우리나라에서 설날에 떡국을 먹었다는 기록은 19세기쯤부터 남아 있다. 그러나 풍수육비라 불리는 더 오래된 신년 의례에서 이미 떡과 국은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음식이었다고 한다. 떡국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나이를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의식이자, 묵은 때를 씻고 새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상징이었다. 흰 떡은 깨끗함을, 길게 뽑은 가래떡은 장수를, 동그랗게 썬 떡은 복과 재물을 뜻했다.


새해 첫날 아침, 메뉴는 역시 떡국이었다.

냉동실 한 켠에 동그랗게 썰어 둔 흰 떡국떡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눈으로 위아래를 훑다가 먹다 남은 만두를 꺼냈다. 한 팩 남은 사골 국물은 단단히 얼어 세로로 서서 겨우 빈틈을 메우고 있었다.


어제 먹다 남은 북엇국에 사골 국물을 들이붓고, 눈물이 날 만큼 팔팔 끓인 뒤 국물만 작은 냄비에 옮겨 담았다. 사골과 북어 국물이 서로 좋다고 팔팔 끓어오르는데, 갓 찬물에 샤워한 떡국떡들이 차례로 몸을 던졌다. 맞잡았던 국물들이 놀라 손을 놓듯 터져 올랐다.


둥근 떡이 익어 가는 걸 확인하려고 몇 개를 집어먹으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칼칼한 만두 부인이 주황색 속살을 드러내며 풍덩풍덩 뛰어들었다. 하얀 떡국이 사방으로 튀며 그 차가움을 밀어냈다. 밀고 당기는 사이 거품이 일어나 무거운 냄비 뚜껑을 들어 올리더니, 순식간에 분을 참지 못하고 바닥까지 흘러내렸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고 나자 국물과 재료들은 모두 겸손해졌다. 보기 좋게 두 대접에 나뉘어 담겼다. 들깨가루를 뿌리고 후추를 살짝 얹어 한 숟갈 떠먹으니, 딱 좋다. 그 한마디에 웃음이 났다.


반찬은 배추김치와 총각김치.

전라도에서 어제 저녁 도착한 배추김치는 겨울을 버텨낸 몸이 작고 초라했지만, 단맛과 고소함만큼은 고스란히 지켜 밥상 위에서 당당했다. 충청도에서 온 총각김치는 꼬리를 달고 있어 한입 베어 무는 순간 ‘겨울의 맛이 바로 이것이구나’ 싶어 침샘이 터졌다.


경상도 떡국떡, 전라도 김치, 충청도 총각김치.

이 조합 덕분에 2026년의 첫 끼는 유난히 오래 기억될 것 같다.


해마다 찾아오는 새해이지만, 또 한 번 생각한다.

올해에는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기대와 다짐을 함께 삼키며, 떡국 한 대접을 말끔히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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