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앞에서

by 자그노기

오십 대 중반에서 칠십 대 중반 사이에

우리 형제자매들이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다.


한 배 속에서 나왔지만

성격과 삶의 모양은 저마다 다르다.


각자의 가정을 이루고 살아오다 보니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한 채

시간만 길어졌다.


부모님의 기일이 다가오면

쉽게 수화기를 들지 못한다.

잠시 망설임이 손을 붙잡기 때문이다.


전화가 연결되면

수화기 너머의 말투와 공기를

조심스럽게 살핀다.


연락을 미루며 살아온 것은

어쩌면 서로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음을 직접 전하기보다

다른 형제를 통해 서운함을 흘려보내기도 한다.


자기 삶을 달달 볶으며 살아온 사람은

원망이 많고,

삶이 비교적 순탄했던 사람에게는

그 마음이 버겁게 느껴진다.


손주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우고 싶은 사람도 있고,

세상에는 나와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말한다.

“우리 손주들은 아직 어려.”


각자의 삶이 켜켜이 쌓인

‘가족’이라는 이름 앞에서

누군가는 차라리 지워지고 싶을 만큼

자존심이 높아진 것일까.


감정을 배우지 못한 채 자란 탓인지

서로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일은

여전히 서툴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인 감정에만 매달린 채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기도 한다.


어쩌면

관심 받고 싶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형제들에게 바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없이 흘러나오는

감정의 찌꺼기들을

모두 받아낼 자신은 없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기대를 조금 접고

서운함을 조금 접고

굳은 마음도 조금 접어


잠시 덮어 두고

그저 함께 걸어가 보면 어떨까.


적어도 우리는

한 울타리 속에서 태어난

부모의 분신들이니까.


오늘

망설이던 손을 들어

수화기를 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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