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선택

by 자그노기

선희는 고향을 다녀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낯선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30여 년 만에 듣는, 어린 시절 옆집 동생의 것이었다.


“고모, 그 인간이 암 4기래.”


거친 숨결이 섞인 목소리에는 체념과 분노가 뒤엉켜 있었다. 그는 아버지를 ‘그 인간’이라 불렀다.


“같이 사는 그 여자가 그러는데, 내가 병원비를 내래. 우리 아빠라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차갑게 쏟아낸 말 속에는 끝내 울음을 삼키는 기척이 배어 있었다. 선희는 그 목소리에서 오래된 상처가 터져 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선희의 기억 속에서 동생의 아버지는 본래 마음씨가 착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 셋을 두고부터 달라졌다. 술에 취해 몽둥이를 휘두르며 살림을 때려 부수고, 그릇이 깨지는 소리가 이웃집까지 울려 퍼졌다. 형광등조차 산산이 부서져 집안은 어둠 속에 가라앉곤 했다. 어린 동생은 늘 침묵했다.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했지만, 사실은 공포 속에서 숨죽이고 살았을 것이다. 울타리가 되어야 할 부모의 분노와 불화는 아이들의 삶을 짓눌렀고, 그들의 성장을 가로막았다.


세월이 흐르자 다툼은 끝났으나 상처는 고스란히 아내의 몫으로 남았다. 동네에는 곧 소문이 돌았다. 아랫집 아줌마와 눈이 맞아 함께 고향을 떠났다는 얘기였다. 선희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남겨진 아내는 끝내 집을 지켰다. 시부모를 봉양하며 세 아이를 키워냈다. 어린 시절 자신도 부모에게 보호받지 못했던 설움을, 자식들에게만큼은 반복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우리 엄마는 몸도 아끼지 않고, 오직 일만 하면서 우리를 키웠어.”

동생은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는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아빠 없는 세월을 견딘 나한테, 이제 와서 무슨 낯짝으로 이런 소식을 전해? 죽든지 살든지, 난 상관없어.”


분노로 치닫는 말끝은 떨리고 있었다. 차마 울지 못하는 눈물이 가슴 깊숙이 고여 있는 듯했다.


선희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동생의 아버지는 과연, 병상에 누워 남은 시간을 보내면서 잘못된 선택을 후회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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