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향기

by 자그노기

이른 아침, 옅은 바람이 창문을 스며들 듯 들어오면 낯선 가을 냄새가 먼 꿈나라까지 나를 데리러 온다. 여름 내내 깊은 잠을 자던 이불은 이제야 존재감을 드러내며 나의 품에 포근히 안긴다. 마치 오래된 친구가 건네는 따뜻한 인사처럼, 가을의 틈새에서 맛보는 달큰한 향기다.


그 향기는 나를 어린 시절로 이끈다.

모두 들로 나간 자리에 홀로 앉아 봉숭아 물든 손을 들여다보던 기억, 보랏빛 과꽃과 닭 볏 같은 맨드라미, 인심 좋은 이웃사촌들의 웃음소리…. 지금은 모두 변해버렸지만, 그때의 달큰한 가을 공기만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갇혀 나를 감싸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기억해야 할 추억들을 깊이 감춘 채, 알 수 없는 현실만을 향해 바삐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짜 소중한 것들은 저녁 노을, 가을 향기, 이웃의 따스한 마음, 언덕 위 갈대밭, 흔들리는 빨랫줄의 합창 같은 순간들이다. 그것들은 여전히 우리 안에서 글감이 되어 나오기를 재촉한다.


지금은 도시의 아파트 정원 사이에서 잔잔히 흔들리는 나뭇잎조차 내 감성을 흔든다. 그 움직임이 바로 나를 글쓰기로 이끄는 재료가 된다.


출근길에 앞서 이 향기를 마음껏 맞이한다. 내 삶이 이 계절의 선물로 조금은 풍성해지기를, 그리고 내가 받은 신선한 가을의 향기를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어쩌면 그것이 가을이 내게 내리는 조용한 명령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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