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저녁, 밥을 짓고 있는 엄마 앞에 큰딸이 나타났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이유를 아는 듯, 엄마는 말없이 딸의 손을 잡아주었다.
일복 차림 그대로 급히 집을 나온 게 분명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온기 속에 무언의 대화가 오갔다.
그 시절 맏며느리의 삶은 고단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시동생을 돌보며, 논밭일까지 도맡아야 했다.
그 모든 짐을 지고도 한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한 여인들.
큰언니 역시 그런 세월을 살아내고 있었다.
‘언니는 왜 집을 나왔을까. 무슨 일로 눈물을 흘릴까.’
어린 나는 그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날 엄마와 언니는 말 한마디 없이 마주 앉아 있었지만,
그 사이엔 눈물보다 깊은 위로가 흐르고 있었다.
그 장면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내 마음 한구석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제 한 달 뒤면 나의 딸이 시집을 간다.
어느새 나는 누군가의 엄마이자, 또 다른 세대의 ‘딸‘이
되어 있다.
딸에게서 내 어릴 적 얼굴이 보이고,
그 아이의 눈빛에서 그날의 엄마와 언니가 겹쳐진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엄마가 말없이 잡아주던 그 손이,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를.
사랑은 소리 내어 전하기보다,
말없이 건네는 눈빛과 손끝에서 먼저 전해지는 것임을.
성인이 되었어도 엄마 눈엔 여전히 아이 같은 딸.
나 또한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서툴지만 진심으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랑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