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게 먹고 남은 김치들이 모였다.
김치 냉장고를 열 때마다 구석진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그것들은 어느새 천덕꾸러기가 되어 있었다.
아직 먹을 김치가 남아 있어서, 늘 뒷전으로 밀려났던 것들이다.
오늘은 마음을 다잡고 꺼내보니 파김치, 갓김치, 열무김치가 뒤섞여 있었다.
냄비에 한데 넣으니 마치 서로 다른 세월이 뒤엉켜 있는 듯했다.
‘어떻게 요리를 할까?’ 잠시 유튜브를 찾아보다가, 문득 생각이 스쳤다.
“역시 내 맘대로 해야 제맛이지.”
들기름을 두르고 김치를 볶았다. 마늘, 굴소스, 꿀, 물을 넣고 한소끔 끓인다.
물이 졸아들면 다시 붓고, 맛을 보고, 질기면 더 졸인다.
그 과정을 반복하는 동안 주방엔 진한 냄새가 퍼지고, 김치는 점점 부드러워졌다.
빛깔은 칙칙해졌지만 냄새만큼은 진심을 품은 듯, 창문을 타고 바깥으로 흘러나갔다.
음식은 정성이라 했던가.
대충 볶아도 될 텐데, 나는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 정도면 됐다’ 싶은 순간에도 자꾸만 젓가락을 멈출 수 없었다.
완성된 맛을 얻기 위해 기다리는 그 시간,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계속 맛보다 보니 벌써 배가 불렀다.
시계를 보니 출근 시간이 다가온다.
밥솥엔 밥이, 냄비엔 된장국이, 찜통엔 명절에 남은 송편과 만두가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냄새로 먹는 한 끼 식사는 잠시 나를 밀어내고, 저녁에 돌아올 식구들을 기다린다.
가정이 아무 일 없이 돌아가는 건
아마도 눈에 보이지 않는 우렁각시들 덕분일 것이다.
누군가의 손끝이, 아무도 모르게 질서와 청결, 건강을 지탱하고 있다.
반복된 일이 쳇바퀴처럼 굴러가지만
그 속에서 우리를 살게 하는 건, 결국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있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