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냄새가 스며든 엄마의 계절

by 자그노기

김장철이 다가오자 농수산물시장은 다시 분주해졌다. 배추와 무 다발이 층층이 쌓여 있고, 김장 준비를 위해 차를 대고 물건을 실어 나르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예전처럼 산더미만큼 쌓아놓지는 않았지만, 겨울의 맛을 알리는 김장철의 기운은 그 현장만으로도 충분히 느껴졌다.


해마다 돌아오는 김장은 마치 수능시험처럼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큰일이었다. 햇마늘이 나오기 전 저장마늘을 챙기고, 가을 고춧가루를 사두고, 각종 양념을 준비해놓다가도 남들이 김장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덩달아 마음이 급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래, 이번 주 토요일에 하자’ 하고 마음먹게 되는 김장날. 배추 열 포기만 해도 충분하겠지만, 며칠 고민 끝에 결국 해남 절인 배추 20kg을 주문했다. 집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있어 털 날림 때문에 망설였지만, 그 고민도 김장 앞에서는 사소하게 느껴졌다.


배추가 도착하기 하루 전, 찹쌀풀을 쑤려고 쌀을 씻어 담가두고, 청각을 불리고, 육수를 끓이기 시작했다. 부엌에 퍼지는 진한 향은 코끝을 톡톡 건드렸고, 나는 벌써 김장김치의 새콤한 맛을 상상으로 먼저 맛보았다. 냄비에서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걸 바라보는 고양이의 모습은 보초를 서는 듯 긴장감까지 감돌았다.


전라도 고향마을 엄마의 손맛을 닮은 이웃집 언니에게 양념 김치 40kg을 부탁했다. 그 속에 혹시 엄마의 냄새가 스며 있을까, 잊혀질 듯한 그 맛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담겨 있다. 봄부터 겨울까지 고단하게 농사짓고 얻은 소산물들이 김치라는 빨간 옷을 입고 태어나는 순간이 떠오르며 괜히 마음이 뜨거워졌다.


12월 9일이면 도착할 그 김치. 도시에서 담근 김장김치와는 다른 세계일 것이다. 시골 김치는 진한 젓갈향과 짜고 매운 맛이 칼칼하게 살아 있다면, 내가 담그는 김치는 진한 맛을 뺀,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건강한 맛에 가깝다. 어쩌면 다른 사람 입에는 조금 밍밍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나도 처음에는 전라도식이었지만, 시댁 어른들이 짠맛과 조미료를 싫어해 그 입맛에 맞추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변해 버렸다.


김장은 늘 준비가 쉽지 않다. 시장에 다시 들러 쪽파, 홍갓, 대파까지 사와야 비로소 재료가 완성된다. 이 큰 행사가 끝나야만 겨울 준비가 온전히 마무리된다. 아들이 이번엔 수육을 삶아줄 거냐고 묻는다. 항상 김치만 먹었다며 투덜거리기에, “그래, 이번엔 삶아 먹자” 하고 답했다. 벌써부터 고소한 냄새가 코끝에서 스친다.


김장이 끝나면 어김없이 몸살이 찾아오지만, 알고도 매년 김장의 몸을 담그는 건 아마도 우리 엄마들이 그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손길과 정성을 닮고 싶은 마음, 그리고 겨울을 든든하게 나기 위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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