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파도
절임 배추가 오는 날, 나는 밤새 잠을 설쳤다.
작은 일에도 마음이 출렁이는 내 성정을 알면서도, 이번엔 별일 아닐 거라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쉽지 않았다. 평정심이라는 건 늘 시험지에 풀지 못한 마지막 문제처럼 남는다.
목요일에 주문했고, 토요일 오전에는 양념소까지 만들어 놓았다. 배추만 오면 김장을 할 수 있었다. 전라도에서 오는 택배는 늘 저녁 무렵 도착하곤 해서 10시까지는 괜찮았다. 그러나 11시 50분을 넘기도록 감감무소식. 그때부터 마음이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했다.
9시에 했던 전화는 받지 않았고, ‘요즘 물량이 많겠지’ 하며 이해하려 했지만, 괜찮다며 눕기만 하면 다시 벌떡 일어나 현관을 확인했다. 택배 상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늦은 밤이라 다시 전화하는 것도 민폐 같아 조심스레 문자를 보냈지만 답은 여전히 없었다.
그때 이미 마음 한편에 아주 작은 금이 갔던 것 같다.
잠깐 잠이 들었다 다시 깬 새벽 5시. ‘시골이니 이 시간엔 일어나겠지’ 하는 기대를 얹어 전화를 걸었다.
“토요일에 오기로 한 배추가 아직 안 왔어요.”
“그래요? 착오가 있었나 보네요.”
착오.
그 두 글자가 눌러 앉아 있는 속을 툭 건드렸다.
“어제 양념소 다 만들어놓고 기다렸는데… 어떡하죠?”
“오늘 다시 절여서 보낼게요. 월요일에 받으세요.”
월요일엔 출근.
이미 만들고 숙성된 양념.
내 계획과 마음이 한순간에 고꾸라졌다.
그래서 물었다.
“택배는 보냈나요?”
“보냈는데… 이런 일도 있어요. 마음 정리해서 다시 전화 주세요.”
마음 정리.
그 말이 참 얄궂었다.
정리는 그쪽이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배추를 직접 절일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고양이 털도 신경 쓰였고, 검색해 보니 절임 과정이 이틀이나 걸렸다. 그 사이, 그쪽에서 덧붙였다.
“양념은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다음 주 토요일에 하시면 어때요?”
그 말 한 줄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야말로 ‘헐’이었다.
내 시간을 계산해 채워 넣은 노력 위에, 아무렇지도 않게 한 주 뒤를 얹으라고 말하는 태도.
결국 다른 답이 떠오르지도 않아,
“그냥 보내주세요.”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미안하다는 말이 있었지만, 밤새 울컥하고 뒤척였던 속은 금세 풀리지 않았다.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면 될 것을 택배 탓으로 돌리는 것 같은 말투, 어쩐지 구차해 보이는 변명들.
잠 못 자고 마음 쓴 것을 생각하니 그들의 말 한마디, 숨소리 하나까지도 예민하게 들렸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절임배추를 한꺼번에 준비하는 그 현장, 분주한 소리, 수십 상자를 동시에 보내는 손길들.
바쁘면 실수도 할 수 있지.
그렇다, 백 번 이해할 수 있는 문제였다.
다만 내 마음이 그곳까지 도달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을 뿐이다.
욱하고 올라왔던 감정이 식은 뒤,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한결 나아져 있었다.
그래, 세상일이 다 내 계획대로 돌아갈 수는 없지.
화를 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마당으로 나가 흩어진 낙엽들을 쓸었다.
바람에 휘날리던 낙엽을 한곳으로 모으는 동안, 내 안의 불편한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감정도 결국 손으로 쓸어 담아야 비로소 정리되는 것인지 모른다.
그때 문밖에서 택배 오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혹시 절임배추?
급히 문을 열었지만 아니었다.
내 기대만 활짝, 그리고 공허하게 열렸다.
한 시간, 한 사건에 마음이 요동친다는 건 결국 ‘내가 짠 그림과 다른 흐름’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남은 묘한 찝찝함, 이끼처럼 눅눅하게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감정은 뭘까.
아마도, 그만큼 내가 이 일을 성심껏 준비하고 기대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오늘의 나는, 그 마음을 비로소 인정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