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is self-harm

by 빈집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진심을 다 해도 끝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살다 보니 종종 생기곤 한다. 가장 가고 싶은 대학교에 가기 위해 모든 걸 쏟아부었는데도 결과는 참담하게도 불합격 세 글자. 몇 년을 바깥세상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청춘을 갈아 넣어 치른 국시 시험에 떨어졌을 때. 내 몸에 딱 맞춘 정장을 입고, 평소에는 커서 신지도 않던 구두에 휴지를 끼워 넣어 신고, 입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은 심장을 달래고 달래서 본 면접에 끝내 떨어졌을 때.

그리고 한평생을 바칠 만큼 온 마음을 담아 사랑하던 사람이 끝났을 때.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는다. 희망적인 말인 건 사실이지만 희망이 때로는 좌절감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만약 저 말대로 간절히 원하고 원하면 이뤄지는 게 가능하다면 이 세상은 지금쯤 어떤 모습일지 감히 상상조차 안 간다. 과연 그런 세상이 살기 좋은 세상인 걸까?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도 간절히 원한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잡으려 할수록 도망가는 게 사랑이니까.

사람은 사람 때문에 아프다는데 내가 사랑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날 아프게 할 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기에 도대체 어떤 사랑을 해야 하는 걸까.


나 자신을 알지도 못 한채, 알지 못하니 당연히 친해질 수도 없었고, 그런 나를 사랑할 수도 없던 내가 감히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그간 내가 사랑이라 착각했던 것들은 결코 뭐였을까?


과거의 나는 사랑을 누군가에게 주는 법도, 받는 법도 몰랐다. 나는 상대방에게 무조건적인 헌신을 하는 게 사랑이라 생각했다. 감정의 헌신도, 육체의 헌신도, 금전의 헌신도 다 그를 위한 것이며 이게 사랑이라 생각했다. '나에게 일관성 없는 태도를 취해도 괜찮아, 다른 사람에게 눈 돌리더라도 잠시 그런 거겠지, 이 관계가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대로 흘러가더라도 괜찮아,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있다면 모든 걸 다 줄 준비가 되어있어. 이거 사랑이지? '


남들은 사랑하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데 나도 달리 보이긴 했다. 선명하지 않았다. 내가 보는 세상이...

나 스스로가 망가져가는데 알지 못했다. 나에게서 내가 없어져가는데 몰랐다. 내 정체성을 잃어가고 모든 걸 잃어가는데도 알지 못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나서야,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관계가 끊어지고 나서도 뭐가 잘못 됐는지 몰랐다. 그저 내가 못난 사람이었고 모든 게 다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 속에서 하루를 간신히 버티고 있었을 뿐이었다.

사실 나는 사랑한 적이 없다. 가슴이 쿡쿡 쑤시지도, 눈물이 나지도, 미래를 함께 그리지도 않았으니까. 사랑을 준 적도 받은 적도 없다. 그저 당장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고, 텅 빈 내면을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 채우고 싶었던 거였다. 불안정한 마음으로 불안정한 사람을 만난 거였다.


" 우리 집이 지금 형편이 안 좋아져서 너랑 만나기 어려울 거 같아. "

" 얼마나 어려운 건데? 내가 있잖아. "

" 그럼 나 돈 조금만 빌려줄래? "

" 그래 알았어. 천천히 갚아도 돼. "


가족끼리도 함부로 돈 빌려주는 거 아니라는데 순진한 나는 무턱대고 돈을 빌려줬다. 학생이었기에 큰돈은 아니었지만 결국 못 돌려받았고 그 시점 이후로 흐지부지 끝나게 되었다. 그저 날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었다는 걸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되었다. 집 형편이 어렵다는 건 다 거짓말이었고 지금 당장 본인이 돈이 없으니까 그런 척 연기한 것이었다. 더 이상 나에게 가치를 못 느끼게 된 건지 이별을 고했꼬 나는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끝나게 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두렵고 무서웠다. 당장 내 옆에 있어줄 사람이 없는데, 나는 나 홀로 설 힘이 없는 사람인데, 나는 누구한테 기대야 하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불안정한 나의 마음을 더 요동치게 만들었다. 사랑이라 착각했던 이 관계는 마치 자해 같았다. 스스로를 고통 속에 몰아넣으면서도 멈출 수 없는. 나는 매달렸고 계속 매달렸다. 그럴수록 상처의 골은 더욱더 깊어졌다. 날 떠나는 게 나의 외모가 별로여서, 나의 몸매가 별로여서, 나의 성격이 별로여서, 이런 나에게 싫증을 느껴서 떠나는 거구나 생각했다. 모든 게 나 때문인 것 같았다.


그저 내 옆에 누군가 있어주길 바랐던 거뿐이었던 거다. 한평생을 바칠 만큼 온 마음을 담아 사랑한다는 걸 알지도 못했고 그렇기에 그런 적도 없었다. 이걸 사랑이라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굳이 사랑이라고 포장해서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다. 그간 했던 유사 사랑은 나에게 일종의 자해였다.


한 번 크게 아프고 나니까 회복탄력성이 생긴 건지 털 수 있는 건 툭툭 털고 일어설 수 있게 된 나.


이런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의 나는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사랑을 주고받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보는 세상도 선명해졌고, 가슴이 쑤시고, 눈물도 나고, 미래가 더 이상 두렵지 않아 졌다. 나 자신을 알게 되었고, 나와 친해졌고,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누군가를 온 마음 담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미래가 곧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의 미래가 곧 내가 되었다. 내가 이젠 제법 괜찮은 사랑을 하고 있다. '사랑해'라는 말 한마디로 내 마음속 사랑을 다 담아내지 못해 속상하다는 말도 한다.


어떤 사랑이든지 큰 깨달음을 주기에 사랑을 시작하기에 너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에게 상처를 안겨준 사랑일지라도 그 속에서 어떻게 상처를 다루고 회복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고, 스스로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거 기에. 다음 사랑을 더 잘하기 위함이었음이라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지금 현재 사랑 때문에 눈물 흘리고 아파한다면 내가 진정한 사랑을 향해 날기 위해 도약하고 있는 것이구나라고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해주자.


우리는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니까.


지금 나는 진짜 사랑을 하고 있다.


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