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말을 걸어오다
코로나 이후 가족끼리 해외여행이다. 퇴직 후 아이들이 만든 소중한 추억 만들기다. 사랑스러운 딸과 믿음직한 사위, 나의 동반자인 아내와 함께 간다. 4명이 4박 7일 동안 호주와 발리를 둘러보는 여행코스다. 호주 멜버른에서 3박, 발리에서 1박 한다. 나머지는 공항과 비행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첫날, 인천공항에서 호주 시드니를 거쳐 멜버른을 향해 출발했다. 설렘 반, 우려 반 감정이 교차된다. 나는 기대가 되는데 아내가 걱정이다. 아내는 멀미와 이석증이 수시로 찾아온다. 장시간 여행이라 잘 다녀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출발부터 시간이 늦어진다. 저가 항공이라 제시간에 출발이 안 되나 보다. 30분 늦게 호주 시드니를 향해 출발했다. 먼저 시드니로 가는데 10시간 30분 걸린다. 다행히 좌석이 좁은 구역은 아니어서 덜 고생은 했지만 장시간을 참고 가야 했다. 책을 보고 영화를 보고 기내식을 먹어도 시간이 잘 가지 않는다. 돈을 똑같이 내더라도 승객들이 편하게 누워서 갈 수 없을까? 아니면 좌석을 열차처럼 침대칸으로 만들어서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비를 더 낸 소수에게 좌석이 편한 구역이 있기는 하지만. 좌석을 조금 눕혀서 안대를 끼고 귀를 막고 잠을 청해 본다.
둘째 날, 드디어 시드니 공항에 도착했다. 멜버른에 가기 위해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다. 시드니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멜버른행 제2공항으로 옮겨갔다. 여기서도 1시간 지연이다. 역시 호주 저가 항공사다. 예정보다 1시간 넘게 기다리다 멜버른에 갔다. 드디어 멜버른 공항에 도착하여 우버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집에서 출발한 지 22시간 만이다. 거의 하루 만에 멜버른에 도착한 것이다.
멜버른은 영국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영국의 식민지여서 건물부터 영국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멜버른은 작은 영국이다. 멜버른은 1927년까지 호주의 수도였다고 하니 예전에 명성을 찾아보기 쉬운 문화와 예술의 도시다. 그렇게 크지 않은 야라강이 멜버른 시내를 유유히 흐른다.
캔버라는 행정기능을 담당하는 호주 수도다. 호주 제1의 도시는 시드니지만 멜버른은 시드니와 함께 호주를 대표하는 도시다. 우리나라 서울과 부산이라고 할까?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버스와 지하철도 있지만 시내를 관통하는 트램을 타고 이동했다. 트램은 외국인에게도 프리 패스다. 우리나라도 트램이 운행되는 지역이 있으면 좋겠다. 도시나 시골의 풍경을 만끽하면서 자유롭게 달리는 트램을 기대해 본다. 도시 풍경을 힐끗 보면서 현지 식당으로 이동했다. 식당옆 야외 테이블이라 여름인데도 바람이 차갑게 불어서 난로를 켜고 먹어야 했다. 주 메뉴는 스테이크다. 소개받은 식당이라 맛있게 먹었지만 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호주 물가가 비싼 편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야라강을 따라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과 도시 풍경을 둘러보았다. 멜버른 시내의 고층 건물들이 호주의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잡화점에서 간단한 쇼핑을 하고 숙소로 들어왔다. 호주 멜버른에 힘겹게 도착을 해서 그런지 숙소에서 단잠을 잤다.
출발한 지 셋째 날이다.
이른 아침 조식을 간단히 챙겨 먹고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 간다. 멜버른에 간다면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지역이다. 소규모 투어차를 타고 6명이 7시에 출발했다. 편도 200km가 넘는 지역을 3시간 동안 달려서 갔다. 굽이 굽이 해안 도로 풍경이다.
바람이 부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해안가는 오랜 역사를 간직해 온 멜버른의 풍경이다. 명성에 걸맞게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바람으로 파도가 넘실거리는 해안가에 거석들이 거친 바람을 견디고 서있다. 모진 비바람도 이겨내고 우직하게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바람과 함께 만들어지는 파도가 바다를 하얗게 색칠하고 사라진다. 바다에서 펼쳐지는 흰 주름은 과연 몇 살일까? 해가 지나가도 똑같은 나이일까?
해안가에 서 있는 거석들의 이름이 지역과 관계없는 12 사도 상이다. 바위가 열두 개가 있는 것도 아니다. 흰 파도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바위 예술품이다. 신이 조각한 선물이다.
그 옆의 로크 아드 계곡에서 호주의 마지막 이민선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입구에는 52명의 선원 추모비가 옛날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로크 아드호는 영국에서 호주 멜버른으로 이주민과 화물을 실어 나르던 범선으로, 1878년 항해 중 거친 안개와 파도, 복잡한 해안선 때문에 그레이트 오션 로드 인근 암초에 부딪혀 좌초·난파되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배에 탔던 사람은 대부분 목숨을 잃고, 극소수만이 살아남는 대형 해난 사고가 되었다.
다리가 중간 부분이 침식되어 그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런던 브리지에서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마지막 풍경을 만났다. 풍경이 말을 걸어온다. 차 안에서 가이드가 런던 브리지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회상해 본다. 런던 브리지에서 갇혀있었던 두 사람이 연인인가 부부인가? 스토리가 있는 런던 브리지다.
스웨덴에서 온 젊은 부부와 짤막하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이가 웃으며 나를 반겨준다. 물론 내가 그 아이에게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어 반겨 주었지만. 언어는 달라도 미소는 통하나 보다.
우리를 안내하는 가이드는 종종 여기서 긴 호흡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일명 물멍을 한다. 런던 브리지 풍경이 말을 걸어오나 보다.
무슨 말을 주고받을까?
다시 멜버른에 올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근처에서 1박을 하며 저녁노을 지는 풍경을 카메라로 담고 싶다. 붉은 노을에 비친 거대한 거석들이 어떤 말을 걸어올까? 기대가 된다. 풍경이 말을 걸어온다.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냐고?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그 어떤 언어로 표현할까? 맑은 날, 긴 호흡을 한다. 수채화 같은 그림 앞에 잠시 숨을 멈쳐본다. 벅찬 마음으로 풍경을 렌즈에 담아본다. 떠나고 싶지 않다. 머무르고 싶다. 숨을 길게 들이마시며 오늘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다.
출발한 지 넷째 날이다. 오늘은 단데농 퍼핑 빌리 투어와 펭귄 서식지에서 펭귄의 귀여운 모습을 보는 투어다. 먼저 단데농으로 출발한다. 증기기관차를 타고 삼림 벌판을 달린다.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다. 숲 속을 헤치며 칙칙폭폭 열차는 달린다. 저속으로 달리는 열차에 발을 내밀고 걸터앉아 서로가 아이들이 된 것처럼 영화 속 주인공이 되었다. 풍경이 말을 걸어온다.
옛 추억으로 달리는 열차 안에서 소중한 사람끼리 간직한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냐고?
오후는 펭귄들의 이동 시간에 맞추어 필립 아일랜드에 가기로 했는데. 펭귄들의 퇴근 시간에 펭귄을 볼 수 있다고. 펭귄을 보고 돌아오는 시간이 밤 12시다. 너무나 늦은 시간이고 멀미가 심해 오후 일정은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오후에 휴식하고 점심 겸 저녁을 한식으로 먹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한식이었다. 역시 꿀맛이었다. 멜버른에서 마지막 밤이라 야경을 즐기려고 야라강을 따라 걸었다. 여기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한 달 동안 즐긴다고 한다. 흰 눈이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무더운 썸머 크리스마스다.
거리나 강가에서 만들어놓은 장식품들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흠뻑 고조시킨다. 백화점 앞에는 레고 전시가 열리는가 하면 야라강 분수쇼가 12월 한 달 동안 펼쳐진다. 매일 밤 11시까지 진행되는 것을 보면 진심으로 크리스마스를 즐기나 보다. 불꽃놀이를 끝으로 다시 강 주변 상가들은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정리하고 잠을 청한다.
발리에서 첫날이자 마지막 날이다. 다시 멜버른에서 인도네시아 발리로 이동한다. 예정시간보다 1시간 지연되어 발리로 출발했다.
발리에 도착하자 공기가 달랐다. 우리나라 여름처럼 습도가 많은 더운 날씨다. 우기 기간이라 더 그런가 보다. 호텔로 이동하는 동안 우리만 이야기하고 우리말을 알아듣는지 모르는지 기사는 운전만 열심히 하고 있다.
공항을 출발한 지 숙소에 30분 만에 도착했다.
발리는 관광지역인 만큼 여행객에게 대환영이다.
호텔 앞에서 전통 악기소리와 아가씨들의 환영 인사로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 준다. 짐을 풀고 숙소 주변을 탐방하면서 수영장에서 무더위를 식혔다. 발리에서 쉼이다. 투어가 필요 없다. 키 큰 야자수와 파도치는 바닷가를 바라보며 호캉스해도 즐겁다.
저녁은 일식집에서 맛있게 먹고 해변가를 산책하며 하루를 마감했다. 호텔 직원들이 매우 친절하다.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현지인이 상냥하게 대해준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가볍게 아침에 카메라를 둘러메고 산책을 했다. 어젯밤 비바람이 불어 해변가로 해조류가 몰려와 더러웠는데 혼자 바닷가를 청소하는 사람이 보였다. 호텔 직원일 것이다. 아니면 지역주민에게 주는 일거리 일수도 있다. 투숙객을 깨끗하게 맞이하기 위하여 해변가를 아침에 청소하는 모습이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아침부터 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조식은 호텔 뷔페로 인도네시아 식당에서 먹었다. 야외 활동을 취소하고 실내에서 탁구와 사우나를 즐기며 출발 전까지 시간을 보냈다. 다시 발리 공항으로 이동하여 밤 11시 국적기를 타고 6시간 50분 동안 기내에서 시간을 보낸 뒤 인천에 도착 아침을 먹고 집으로 향했다. 역시 엄마 품처럼 우리나라가 포근하다. 우리를 태운 승용차는 인천을 출발하여 서울 한강을 곁에 두고 집을 향해 유유히 달렸다. 다음에 6명이 함께 하는 여행을 기대하며 차창가에 펼쳐지는 풍경에 눈을 돌리고 소중한 추억이 담긴 짧고 긴 여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