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가을 나들이

호남이 없이는 조선이 없다

by 디카지기 조

해남은 내게 제2의 고향이다. 해남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아버님께서 20년 동안 이곳에서 목회하셨기에 자주 내려오곤 했다. 그 시간들이 쌓여 해남은 자연스럽게 내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해남은 참 살기 좋은 곳이다. 푸른 바다와 산, 기름진 땅이 어우러져 경치가 좋고 먹을거리도 풍성하다. 우리 국민이 즐겨 먹는 배추는 늦봄까지 산지에서 신선하게 맛볼 수 있고, 겨울 간식으로 사랑받는 고구마도 이곳이 유명하다.

가을이 오면 두륜산은 또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신록의 봄도 아름답지만, 오색으로 물든 가을 역시 감탄이 절로 난다. 남도의 풍경은 동양화 같다.


해남 대흥사 (1).jpg 해남 대흥사 입구




어둠이 짙게 깔렸다. 안개가 자욱한 다리 아래로 울돌목의 거센 물살이 요동친다. 흐르는 물소리조차 범상치 않다. 바로 이곳에서, 1597년 이순신 장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다. 명량대첩. 12척의 조선 수군이 133척의 일본 함대를 물리친 전설 같은 해전이다.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열 배가 넘는 적을 상대로 승리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요,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선 형국이다. 누가 봐도 게임이 안 되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냉철하게 상황을 읽고, 울돌목의 물살을 이용해 적을 제압했다. 절망 속에서 지혜로 쟁취한 승리였다.

명량대첩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었다. 이곳이 무너지면 조선이 무너진다는 절박한 믿음이 있었기에, 끝내 이 땅을 지킬 수 있었다.


_DSC5318.jpg 해남 우수영 울돌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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