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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아래 Jun 25. 2023

선물

마음을 전해준 선물

 내가 처음 R의 집을 방문했을 때, 어머니는 칭얼되는 2살 된 동생을 작은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달래기에 여념이 없었다. 반면 할머니는 주방에 나와 앉아 R의 수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R은 공부나 책 읽기에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보였다.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아니 그날 독서수업을 해주러 온 나에게 딱히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심전심이라 했던가. 나에게 그다지 반응을 보이지도 않고 책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R에 대해 나도 큰 관심은 생기지 않았다.

할머니가 카드를 내놓으며 1년어치 교재를 구입하고 주 1회 독서수업을 해달라고 했다.

그러니까 부모님이 아닌 할머니의 전폭적인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 아이인가 생각이 들었다.


 계약을 하고 나서 일주일마다 R에게 가서 읽을 책을 점검하고, 숙제를 체크하고 나서 질문을 통해 책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나누고 난 후 글을 쓰게 했다.

단 한 줄도 그저 쓰는 법은 없었다.

"어떻게 쓸지 모르겠어요"

"다 썼는데 그다음엔 뭐라고 써요?"

또 한 줄을 코칭이랍시고 이런 식으로 쓰면 좋겠다. 하면 그대로 쓰기 바빴다.

독서수업을 하다 보면 자신의 생각으로 한 줄도 못쓰는 아이들도 있긴 하다. 괜찮다.

두 어달만 지나도 감을 잡기 시작할 테니.

문제는 책까지 읽어 오지 않는다면 수업이 될까?

R은 준비되지 않은 수업시간이 팥죽할멈한테 다가오는 호랑이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책을 못 읽었어요"

"왜 책을 못 읽었어?"

"학원 다녀오면 책 읽을 시간이 없어요. 정말이에요"

"엄마께 말하지 않을 수 없구나. 책은 읽어 와야 수업이 되는 거라서"

"한 번만 봐주세요. 그리고 엄마가 아니에요. 숙모지."

"밖에 있는 저분이 숙모였어? 엄마는?"

묘한 호기심이 일렁인다. 큰 감정의 동요를 내비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억양 없이 물어본다.

"엄마는 아빠랑 이혼하고 가버렸어요. 삼촌집에서 동생들하고 지내고 있어요"


"그럼, 왜 숙모라고 부르지 않고 엄마라고 불렀지? 저번에 내가 들었는데 엄마라고 부르더라"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또 말한다.

"엄마라고 부르라고 해서요. 그냥 엄마라고 불러요"

숙모라는 분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자기 아이들이 세 명인 데다 R까지 네 명을 자기 자식처럼 키운다는 것 아닌가?

요즘처럼 자기 생활을 중요시하는 때에 자신을 불태워 육아에 올인하는 것 아닌가?

어쩐지 어느 땐가 수업하고 나올 때 머리를 산발하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불쑥 튀어나오며 인사할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얼마나 머리가 산발이었냐 하면 미친 사람처럼 일부러 엉클어 놓은 듯한 산발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깜짝 놀랐지만 곧 '선생님에 대한 예의가 없구나' 하는 마음마저 올라와 불쾌한 기분마저 느꼈다. 그런데 R의 얘기를 들으니 숙모가 대단한 살신성인 군자인 것만 같아 존경심마저 든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그 부스스하고 게으르게 보이는 숙모가 해냈단 말이지.

게다가 블로그를 쓰려면 글도 어느 정도 잘 써야 하는데.......


R의 수업태도에 대해 딱히 숙모와 얘기하지는 않았다.

숙모가 먼저 "선생님. 우리 OO이가 책을 잘 읽었는지 모르겠네요"라든가 "우리 OO가 글씨가 엉망이죠?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이렇게 관심을 보여 오면 "책은 한 번씩 안 읽어 오면 제가 목이 터져라 읽어 줍니다."라고 웃으며 퉁치기도 하고 "글씨는 습관인데 좀 천천히 쓰라고 해봐야겠어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어머니가 파워블로거라고 자랑하던데. 정말 대단하세요."라고 오른쪽 엄지를 세워 굿! 굿!이라고 추켜 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숙모는 가볍게 웃고 만다. 그러나 가정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고 숙모도 말하지 않았다. R은 한 번씩 가정사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내어 놓는다. 그것을 보면 내가 생각하듯 숨겨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 그래서 나도 좀 편안해진다.


"다음 주에 수업이 안 돼요."

R이 이렇게 운을 뗀다.

"그래? 무슨 일 있어?"

"제가 이번에 학원에서 하버드대학 견학 가거든요"

하버드대학이라...  미국?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시에 위치한 그 하버드대학?

'비행기값이며 여행비가 많이 들 텐데'

R의 아빠는 하루에 300만 원을 버니까 괜찮다고 말한다.

"무슨 일을 하셔? R의 아버님은?"

하지 말아야 할 '아부지 뭐하시노?' 하는 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R마치 물어봐달라고 얘기하는 것 같아서.

 

"우리 아버지는 장사하세요. 통닭집. 장사가 너무 잘돼서 하루에 300만 원 정도는 벌걸요."

그렇다. 정리하자면 R의 아버지는 장사의 신이고 아들 하나 바라보며 사는데 그 아들은 돌아가신 아내의 오빠부인에게 양육비를 주며 키우고 있는 것이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의 정확한 양육환경도 알지 못한 채 하나하나 정보를 캐어 가며 수업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R은 점차 나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어 간다.


나는 R이 미국으로 간 일자와 돌아오는 일자를 달력에 기록해 두었다. 그리고 열흘 만에 R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R은 미국 물을 먹고 난 후에 동기부여가 되었는지 들뜬 표정이 역력했다. 마지못해하는 공부가 아니라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

"미국에 비하면 여긴 완전 시골이에요" 말도 많이 하지 않는 R은 눈을 지그시 감고 회상하듯 여유 있게 말한다.

"여기는 지방도시지. 그럼 미국은 어땠어?"

"미국 보스턴은 빌딩이 말도 못 하게 높았어요. 완전 도시였어요. 그런데 블록 블록마다 노숙자들이 길거리에 앉아 있는 게 보였어요. 어떤 사람은 바이올린을, 어떤 사람은 첼로를 치며 돈을 구걸하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가난하게 되며 어떤 사람은 부자로 사는 걸까?

마침 이번 논제가 이 문제라 자유롭게 얘기를 했다.

R은 활기차 보였고 그동안 나와도 많은 얘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어 있다 보니 나에게 특별한 선물을 했다.

그것은 UNITED NATIONS라고 박힌 45CM 연필이었다. 6달러라고 했다. 원화 7,800원가량.

네이버를 검색하니 하버드 학비는 55,587달러(약 72백만 원)이었다. 기숙사비는 18,941달러(24백만 원). 거의 1억에 육박한다.

정말 이런 학비를 쓰며 교육을 하는 부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R의 선물은 마음이다. 사람이 마음을 열어 가는 과정은 개울물이 흐르듯 잔잔하게 펼쳐져 가지만 결국 세상이라는 바다로 귀결된다.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본 R의 마음이 더 큰 포부와 다짐으로 세상으로 뻗어 나가길 바라본다.

그날 R의 글은 한 바닥이 아닌 두 바닥이나 썼고 단 한 번도 물어 않았다. R은 생각이 많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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