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끝날 즈음이면 나는 늘 같은 질문을 했다.
오늘은 잘 보냈나, 의미 있는 하루였나.
그 질문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나를 평가하는 일이었다.
잘 살았다는 기준은 생각보다 가혹했다.
무언가를 해내야 했고, 감정은 어느 정도 안정돼 있어야 했고, 적어도 어제보다는 나아져야 했다.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날은 조용히 탈락 처리되었다.
그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이 가장 불안했다.
특별히 힘들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기쁘지도 않은 날.
기억에 남길 만한 장면이 없다는 이유를 그 하루는 쓸모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나는 분명히 그 안에 있었다.
숨을 쉬었고, 생각을 했고, 잠시 멈췄고, 또 지나왔다.
아무 변화가 없다는 느낌은 사실 변화가 보이지 않을 뿐 삶이 멈췄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래서 오늘은 하루를 평가하지 않기로 했다.
잘했는지, 못했는지, 의미 있었는지를 굳이 따지지 않기로.
그냥 이 하루가 지나갔다는 사실만 남겨두기로 했다.
평가를 멈추자 조금 다른 것들이 보였다.
긴장 없이 마신 물 한 잔, 아무 생각 없이 본 창밖의 하늘, 몸을 누였을 때 느껴진 피로.
결과로 남기기엔 작지만 살아 있었다는 증거들.
하루는 항상 의미를 증명해야만 존재 가치가 생기는 건 아니다.
그냥 지나간 하루도 삶의 일부다.
오늘의 하루는 기록할 만한 성취도 없고 뚜렷한 감정도 없었다.
그래도 오늘 하루를 살았다.
그 사실 하나면 오늘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