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헷갈리게 할 때가 있다.
분명 따뜻했는데, 어느 날은 낯설다.
어제는 보고싶다고 했으면서 오늘은 하루종일 조용하다.
말은 다정한데, 행동은 조금 멀고, 관심은 있는 거 같은데 확신은 없다.
그 애매함 속에서 나는 또 작아진다.
“원래 이런 사람인가?“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걸까?”
“이 정도는 괜찮은 거겠지?”
또다시 괜찮다는 말을 꺼내려다 이번에는 잠시 멈춘다.
사실은 괜찮지 않다.
애매한 태도는 분명하게 거절당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
기대도 못하게 잘라주는 대신, 희망을 조금씩 남겨두기 때문이다.
읽씹은 아닌지, 말투에 온도가 있는지, 이모티콘 하나에 의미가 있는지.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으면서도 이미 마음은 그 안에 들어가 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흔들릴까.
상대는 그냥 바쁠 수도 있고, 원래 표현이 적은 사람일 수도 있고, 아직 확신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 ‘확신 없음’을 곧 ’나에 대한 거절‘로 번역해버리다.
그 순간, 내 안에 오래된 두려움이 깨어난다.
“역시 나는 애매한 사람이구나.”
“역시 나는 끝까지 선택받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상대의 태도보다 내 해석이 더 빠르게 나를 찌른다.
나는 또 괜찮은 척을 한다.
“편하게 해.”
“부담 갖지 마.“
“나도 별로 깊게 생각 안 해.”
사실은 깊게 생각하고 있으면서.
애매한 관계 속에서 나는 늘 더 노력하는 쪽이 된다.
더 이해하려 하고, 더 배려하려 하고, 더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
혹시 내가 조금만 더 잘하면 명확해질까 봐.
하지만 요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려 한다.
사람이 헷갈리게 하는 건 어쩌면 그 사람의 상태일 수도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애매함 속에서 계속 나를 줄이는 건 결국 내가 나를 더 헷갈리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나는 명확함을 원하는 사람이다.
표현을 듣고 싶고, 자리의 이름을 알고 싶고, 어디쯤 서 있는지 알고 싶다.
그게 집착은 아니다.
그건 내 마음의 안전장치다.
그래서 이제는 애매한 태도 앞에서 나를 의심하기보다 이렇게 물어보려 한다.
나는 이 관계에서 편안한가.
나는 나답게 말하고 있는가.
나는 계속 괜찮은 척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헷갈리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애매함 속에서 내가 나를 잃어버릴 필요는 없다.
이번에는 작아지지 않고 서 있고 싶다.
좋아하는 마음은 유지하되, 나를 지우지는 않으면서.
혹시 그 사람이 끝내 명확해지지 않는다면 그건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아직 선택하지 않은 것뿐이라는 걸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나는 애매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확신을 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