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도록 괜찮다는 말을 써왔다.
그 말은 생각보다 단단했고, 생각보다 많은 상황을 정리해주었다.
"요즘 어때?"
"괜찮아."
이 정도면 충분했다.
더 묻지 않아도 되고,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
괜찮다는 말은 대화를 끝내는 데 가장 적절한 문장이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힘들수록 그 말을 더 자주 사용했다.
정말 괜찮은 날에는 굳이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냥 웃고 있었고, 그냥 잠이 왔고, 그냥 하루가 흘렀다.
하지만 괜찮지 않은 날에는 괜찮다는 말을 여러 번 되뇌었다.
마치 주문처럼.
괜찮아.
이 정도는 다들 겪어.
별일 아니야.
예민한 거야.
그 말을 반복하면 잠시 숨이 고르게 되는 느낌이 있었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정리된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정리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사람.
상담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내 마음쯤은 내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더더욱 괜찮아야 했다.
그런데 몸은 솔직했다.
저녁이 되면 열이 올랐고, 숨이 가빠졌고, 가슴이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심장은 무언가를 대비하는 듯 빨리 뛰었다.
나는 그 순간에도 괜찮다고 말했다.
병원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도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도 괜찮다고 했다.
사실은 무서웠다.
몸이 망가진 건 아닐까, 내가 이상해진 건 아닐까.
그런데도 나는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
괜찮다는 말은 내가 나를 보호하는 방식이었다.
불안을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아서.
상담을 배우며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사람은 감정을 부정할수록 몸으로 표현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인정하지 못했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사랑 앞에서도 그랬다.
상대가 조금만 멀어지면 나는 괜찮은 척을 했다.
"나 바빠."
"신경 안 써."
"괜찮아."
사실은 기다리고 있었고, 확인받고 싶었고, 버려질까 봐 조용히 불안해하고 있었다.
괜찮다는 말은 관계 속에서도 나는 숨기는 문장이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의지할 수 있는 사람, 무너지지 않는 사람, 감정이 과하지 않은 사람.
하지만 그 기준은 어쩌면 내가 나를 몰아세우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한 번도 "괜찮지 않다."고 말해본 적이 없다는 걸.
괜찮지 않다고 말하면 약해지는 것 같았고, 의존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두려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괜찮다고 말할수록 나는 점점 더 작아졌다.
그래서 오늘은 다른 문장을 써보려고 한다.
나는 괜찮지 않은 날이 있다.
나는 쉽게 불안해진다.
나는 사랑 앞에서 작아지기도 한다.
나는 몸으로 먼저 반응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망가진 사람은 아니다.
괜찮다는 말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숨이 조금 편해졌다.
나는 이제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기보다 솔직한 사람이 되어보려고 한다.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불안하다고 인정하는 태도.
사랑이 무섭다고 고백하는 마음.
아마 54화 동안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괜찮다는 말을 붙들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55화인 오늘, 나는 그 말을 천천히 내려놓는다.
괜찮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살아 있고, 여전히 배우는 중이며, 여전히 사랑하려는 사람이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