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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Oct 12. 2022

미안하다, 친구야

100일 글쓰기(15일 차)_친구

1983년, 중학교를 졸업하고 아현동에 있는 고등학교를 처음 입학하던 날에 낯선 급우들 사이에 같은 중학교 출신의 아이가 있었다. 잘 생긴 외모에 사교성도 좋아서 항상 주위에 친구들이 있던 아이의 이름은 김 군이다. 그렇게 같은 반이 되어서 점심밥도 같이 먹고, 방과 후에 같이 어울려서 놀러 다니기도 했다. 알고 보니 집도 가까워서 둘은 거의 붙어 다녔다. 우리 집은 공무원이신 부친과 맞벌이를 하시는 모친이 집을 비우시면 거의 많은 시간을 나 혼자 보냈기 때문에 가능하면 친구네 집에서 숟가락 1개 더 얹어서 식사도 많이 했다. 친구네는 엄마가 치킨집을 아빠는 목욕탕을 운영하셨고 누나와 남동생이 있는 3남매 집안의 장남이었다. 착한 김군은 엄마의 치킨집에서 일을 도와주느라고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졸기가 일쑤 였다.


가깝게 지내는 고등학교 친구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공부하는 쪽 보다는 여학생들과 미팅하고 놀러 다니는 쪽으로 방향이 흘러가다 보니 학교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같이 놀았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서 친구들과 거리를 두고 같이 다니던 학교 근처 독서실을 집 근처 독서실로 옮겼다. 독하게 '고등학교 3학년' 내내 악착같이 공부해서 겨우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입학할 수 있었다. 미안하게도 김 군과 더불어 나머지 친구들 모두 재수했고 다행히 다음 해에는 모두 대학에 입학했다. 친구들 모임의 이름은 '별장계'라고 지었다. 언젠가 별장을 공동 구매해서 같이 즐기자는 의미였고 적립금을 붓기로 했다. 물론 지금은 잔고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중간중간에 여행이나 연말 회식 등으로 계속 지출을 해왔기 때문이다.


5명의 친구들은 결혼해서 10명이 되고 아이들이 태어나서 20명의 대모임으로 변했다. 그러던 중에 김 군 부부간는  성격차이로 이혼을 하게 되고 친구 모임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 번은 부부모임에 김 군이 모친을 모시고 오면 어떠냐는 농담에 다른 아내들이 정색을 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썰렁했던 적이 있었다. 그 이후에도 부부모임이 있을 때마다 김 군은 모임을 빠지기 시작했고 친구간에도 갈등의 골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도 나는 그 친구와 개별적으로 만남을 이어왔고 가끔은 퇴근길에 친구의 집 근처(경기도 안산)나 나의 집근처(방배동)에서 맥주도 한잔 했다. 하지만 결국은 김 군이 모임에서 이탈하는 치명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김군에게는 얘기 하지 않고 다녀온 부부모임 사진이 페이스북에 올라오고 그 사진을 김 군이 보게 된 것이다.


더 이상 모임에도 안 나올 뿐만 아니라 전화도 수신 거부되고 카톡도 모두 차단되었다. 벌써 연락이 두절된 지가 5년이 넘었다. 그래도 나는 명절 때나 그 친구 생일 때가 되면 전화도 하고 카톡 메시지도 남긴다. 하지만 여전히 연락이 두절된 상태이다. 서로의 입장이 다르다 보니 내가 그 친구를 백 프로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씩 '지란지교를 꿈꿀 때' 면 항상 그 친구가 생각난다. 특히 오늘처럼  차가운 가을바람이 부는 날이면 20대 후반의 추억이 자꾸 떠오른다. 나의 집(회현동)과 그의 집(남산동) 중간에 있던 남산 케이블카 옆 포장마차에서 부모에 대한 반항심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고민하며 마시던 차가운 소주와 따뜻한 우동국물이 생각난다.  " 친구야, 내가 미안하다. 연락 좀 해다오."   

" 친구야, 내가 미안하다. 연락 좀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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