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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Oct 28. 2022

나만의 케렌시아

100일 글쓰기(31일 차)

나는 강화도가 좋다. 서울 중심에서 한강변을 오른쪽에 두고 차로 한 시간을 달리면 강화 대교 나 초지대교가 나온다. 그 다리를 지나면 육지 땅을 떠나 바다를 가로질러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려 무신정권 때는 수도였던 적도 있었고 유배지의 상징이기도 했다. 고려 희종에 이어 조선의 연산군, 임해군, 영창대군 광해군 등이 이곳에 유배되었다. 지금이야 경기도 김포와 다리로 연결되어 왕래에 문제가 없지만 과거에는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오지의 섬이었다. 강화도에는 여러 개의 산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단군이 제사를 드렸다는 ‘마니산(469m)’은 산꾼들 사이에서는 대한민국에서 기운이 제일 센 산으로 회자된다.


마니산의 서쪽 기슭 계곡 너럭바위에는 ‘함허동천(涵虛洞天)’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조선 전기 승려인 ‘기화’가 이곳에 머물면서 수도했다고 해서 그의 당호인 ‘함허’를 따서 ‘함허동천’이라고 붙여졌다. 지금은 이곳 아래쪽에 야영장이 형성되어 있다. 야영장에는 2백여 개의 나무 데크가 있어 그중에 한 곳에 텐트를 치고 1박 2일을 머무른다. 이곳 ‘함허동천 야영장’이 바로 나만의 케렌시아이다. 5년 전, 백패킹을 처음 시작했을 무렵 이곳을 소개받아서 선배 백패커와 함께 방문한 이후로 시간 될 때마다 이곳에 온다. 친구들과 함께 오기도 하고 혼자 오기도 한다. 봄에 오기도 하고 가을에 오기도 한다.

‘함허동천 야영장’이 바로 나만의 케렌시아이다.


이곳에 오면 도시의 소리가 완전히 차단된다. 산에서 불러오는 바람소리, 그 바람에 나뭇잎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 그리고 여러 종류의 새소리가 들린다. 특히 새벽녘에는  그 소리들이 더 선명하게 들린다.  눈앞에 보이는 색은 온통 푸른 초록색에 가을에는 그 색이 알록달록 다양해진다. 산 위에서 불을 피우는 것은 불법이지만 이곳 야영장에서는 가능하다. 캠핑요리를 위해서 ‘화기’ 사용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야영장 주차장에서 나무데크 까지 20kg의 박 배낭을 메고 한참 동안 경사길을 오르면 숨이 헉헉거리고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린다. 숨을 고르고 배낭을 데크 위에 세운다. 그리고 배낭 옆에 끼워져 가져온 ‘힐리녹스’ 의자와 테이블을 조립한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월컴 드링킹’으로 강화도 편의점에서 사 온 ‘강화인삼 막걸리’를 양은 막걸리 잔에 ‘콸콸콸~’ 가득 채운다. 멀리 보이는 바닷가에 시선을 고정했다가 고개를 뒤로 살짝 젖혀 하늘을 응시하면서 한잔 쭈욱 들이킨다.  목구멍을 통과하고 식도를 따라 내려가면서 온 몸에 찌릿찌릿 막걸리의 기운이 퍼진다. 나는 이 순간이 너무 좋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앞에 와있다. 이 순간, 1,500ml, 5천 원짜리 ‘강화인삼 막걸리’가 바로 나의 행복이다. 살짝 입안에 남아있는 막걸리의 인삼 부스러기가 씹힌다. 왠지 기분까지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인삼 하면 ‘개성인삼’과 ‘강화인삼’이 최고 아닌가, 오천 원짜리 막걸리에 인삼이 씹히는 건 행운이다.


더 취하기 전에 ‘블랙 다이아몬드’ 사의 파란색 ‘하이라이트’ 텐트를 설치하고 개방감이 좋은 전면부를 열고 반대쪽도 오픈해서 통풍을 시킨다. 에어펌프를 이용해서 에어메트도 빵빵하게 공기를 넣고 침낭도 공기가 통하게 털어서 텐트 위에 걸쳐 놓고 의자에 앉아 아까 마시다 만 막걸리를 한잔 더 들이켠다. 이때 스마트폰 ‘지니뮤직’에서는 잔나비의 ‘외딴섬 로맨틱’라는 곡이 흘러나온다. 디펙에서 ‘MSR’ 리액터와 ‘소토’ 버너를 꺼내 가스통을 돌려 끼우고 새로 산 토치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리액터에는 전용 코펠에 물을 끓이고 버너에는 프라이팬을 올려 버터를 녹인다. 나만의 케렌시아에서 나만의 요리가 시작된다. 생각만 해도 나는 행복하다. 식사 후에 마니산 능선까지 올라 서해 바다를 바라보면 나는 더 행복해진다.

나만의 케렌시아에서 나만의 요리가 시작된다.
생각만 해도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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