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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Dec 05. 2022

겨울산행, 그걸 왜

100일 글쓰기(69일 차)_겨울

나의 백패킹 용품 중에서 가장 비싼 것은 '말라코프스키' 브랜드의 겨울 침낭이다. 브랜드를 발음하기도 어렵고 왠지 저 멀리 얼음나라 쪽 느낌이 나기도 한다. 선배 백패커들의 말에 의하면 남극에서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것이란다. 하지만 비싼 침낭을 산 이유가 있었다. 한 5년 전쯤인가 백패킹을 처음 시작하고 겨울 백패킹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12월 초에 멋모르고 동호회를 따라갔다. 경기도 포천에 있는 '왕방산'이었다. 해가 떨어지자 영상의 낮 기온은 갑자기 영하로 떨어지고 매서운 겨울 산바람까지 불었다. 가을용 침낭을 가졌갔던 초보 백패커는 밤새 오들오들 떨면서 가져간 모든 옷가지를 최대한 껴입고 간신히 눈을 붙였다. 새벽에 목이 말라 텐트 안에 두었던 물병을 마시려는데 물까지 꽁꽁 얼어 있었다. 그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몸에 냉기가 돈다.


다른 회원들은 겨울 침낭에 핫팩도 몇 개씩 사용하거나 뜨거운 보온병을 껴안고 잤다는데 초짜였던 나는 밤새 꽁꽁 언 동태가 되었던 것이다. 다음날 아무 생각없이 친구에게 제일 따뜻하고 비싼 걸로 추천을 받고 인터넷 구매 버튼을 눌렀다. 물론 가격을 생각하면 가끔 후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비싼 이유가 있다. 지퍼도 2중으로 되어있고 머리까지 침낭 속으로 넣을 수 있기 때문에 한겨울에도 끄떡없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속내의 차림으로 자기도 한다. 가장 그 값어치를 한 것은 작년에 얼음 위에서 '빙박'을 했을 때다. 사실 얼음 위에서 잔다는 것이 일반인들에게는 정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나는 '말라코프스키' 침낭을 믿고 한겨울에 '안동시 대사리'로 달려갔다. 꽁꽁언 강의 얼음에서는 밤새 냉기가 올라오고 쩍쩍 갈라지는 소리에 밤새 두려움의 밤을 보냈지만 다음날 무사히 기상할 수 있었다.


추운 겨울에 따뜻한 방 안에서 군고구마를 까먹고 재미있는 넷플릿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만사가 평화로울 텐데, 주말을 그렇게 보내지를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 중에 한 명이다. 이삼십 대에는 겨울만 되면 스키를 타러 다녔다. 그것도 야간에 타는 걸 즐겼다. 야간에 리프트를 타고 스키장 정상에 오르는 동안에 매서운 바람이 두빰을 스치면 볼이 떨어져 나갈 듯하다. 하지만 그 매서운 바람이 너무 좋았다. 가끔은 곤도라 끝자락의 식당에서 파는 뜨끈한 '컵 정종' 한잔이라도 마시면 그 즐거움은 두배가 된다. 희한하게도 그 시절 스키장에서 느끼던 찬 겨울바람은 오십의 나이가 되어 한겨울에 소백산 정상에서 내리치는 눈 섞인 세찬 바람이 대신하고 있다. 산 정상에서 만나는 겨울철의 신비로운 '상고대'를 만나는 즐거움과 함께 보온병에 담아 간 따뜻한 '글루와인'을 한잔하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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