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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Dec 15. 2022

한파주의보, 그래도 등산

100일 글쓰기(79일 차)

아침부터 계속 핸드폰 문자가 울려댄다. 대한민국의 정부에서 나에게 관심을 보낸다. '행정안전부', '서울시청', '서초구청', '강남구청', '동작구청' 총 5군데에서 "서울지역에 대설특보가 있으니 안전에 유의하라"는 안전 안내 문자이다. 며칠 전에 등산 동호회 밴드에 산행 신청을 한 날이 바로 오늘이다. 그저께 저녁에 찬바람을 맞아서 그런지 목이 칼칼하고 머리에 약간의 열도 있어서 이틀 연속 감기약을 먹고 잤다.


아침에 대설 특보 문자를 받고 날씨를 확인해 보니 영하 7도이다. 산에 올라가서 찬바람 맞으면 체감 온도는 영하 15도 정도는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나는 등산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몸 상태가 안 좋으면 안 좋을수록, 날씨가 추우면 추울수록, 눈이 내리면 내릴 수록 더 산에 가고 싶다. "뭐지, 이 삐뚤어진 마인드는"

"서울지역에 대설특보가 있으니 안전에 유의하라"는
안전 안내 문자이다.

모임 장소에 가는 동안 살짝 나의 정신상태를 점검해 보았다. 내가 미쳤나?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등산이라니, 하면서도 살짝 위안이 되는 건 나 말고도 비슷한 상태의 사람들이 몇 명 더 있다는 것이다. 종합 과천청사역에서 등산을 같이할 동호회 회원들이다. 추운 겨울산행을 대비하여 털모자에 장갑, 마스크, 스패치(눈길을 헤쳐나가기 위해 발에 차는 천) 등으로 중무장을 하고 모두 모였다.


오직 펄펄 내리는 함박눈을 맞으며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눈길을 밟아 본다는 기대감으로 지하철 역을 빠져나왔다. 아뿔싸!  밖에는 눈발은 커녕 날씨가 청명해서 눈이 내릴 기미는 전혀 없어 보여 급실망에 빠졌다. 다행인 거는 저 멀리 관악산에는 희끗희끗 눈들이 보여 '그거라도 밟으면 되지 뭐!' 하는 위안을 하면서 과천향교를 들머리로 정상을 향해 올랐다.


한 시간 반쯤 오르는 동안 조금씩 등산로에 쌓여있는 눈의 두께가 두터워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8부 능선쯤 올라 잠시 쉬어간다는 것이 함박눈에 대한 배신감으로 더욱 허기감이 몰려와 빠르게 점심식사 대형으로 헤쳐 모였다. 준비해 간 비닐 쉘터의 양쪽을 나무와 휴게데크 난간에 묶고 독수리 형제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추위를 피해 쉘터 안으로  들어가 등산용 소형 의자를 펴고 둘러앉았다.


준비해 간 음식들을 배낭에서 꺼내 중앙의 매트에 펼쳐놓았다. 등반대장이 준비한 어묵탕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훈훈한 열기와 함께 가수 김필의  <난, 너를> 이 외부와 분리된  공간에 울려 퍼진다. 갑자기 '뚜둑 뚜둑'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함박눈이 천장 비닐을 두드린다. 밖을 보니 엄청난 눈이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대지위에 내리친다.


"그래, 이 분위기~"  내가 원하던 그림이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평소 같으면 이런 겨울 산행에 따뜻한 '사케' 나 '글루와인'을 챙겨 와서 기분을 더 업(up) 시켰을 텐데 오늘은 없다, 어떤 주류도 없다. 대신 달달한 봉지커피와 느낌 있는 국화차를 한잔씩 마셨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정상을 올랐다. 산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과천시내가 온통 하얀 이불로 덮이고 관악산 전체가 온통 하얀 나라로 변해갔다.


헉헉 거리는 숨을 몰아쉬며 정상에 올라  인증석을 배경으로 단체사진과 개인 사진을 어떤 기다림도 없이 마구마구 찍었다. 우리 일행 말고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산할 때는 내린 눈으로 인해서 더욱 산행로가 미끄러웠다. 다행히 아무 사고 없이 안전하게 원점 회기로 날머리를 통과했다. 나의 삐뚤어진 마인드는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고 나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었다. 하루가 보람차다. 오늘이 평일이어서 더 행복하다.   

나의 삐뚤어진 마인드는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고
나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었다.
(이미지 출처: 길사랑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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