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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Oct 24. 2022

흔들리는 억새, 민둥산

100일 글쓰기(25일 차)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라는 말은 베르디(Verdi) 오페라 리골레토(Rigoletto) 제3막에 나오는 아리아의 가사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정확하게는 아리아의 제목은 '여자의 마음'이고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을 표현했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갈대'는 버티지 않고 흔들린다. '억새'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항상 헷갈렸다. 어느 것이 갈대이고 어느 것이 억새인지 구분이 안됐다. 그냥 쉽게 생각해서 산에 있으면 '억새'라고 부르고 강가에 있으면 '갈대'라고 부르는 줄 알았다. 하지만 확인해 보니 전혀 다른 품종이다. 억새가 흰 백색의 1 m20 cm 정도라면 갈대는 2m 정도의 고동색을 띤다. 그러고 보니 민둥산에서 본 가을바람에 흩날리던 것들은 억새가 틀림없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사당역 주변에는 산행 버스들이 장관을 이룬다. 물론 코로나 시절 이전보다는 덜하겠지만 단풍철을 맞아서 많은 버스들이 산꾼들을 태우려고 길가에 불법주차를 하느라고 경찰과 운전사들은 실랑이를 벌인다. 오늘 산행의 목적지는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이다. 지금 시즌은 '민둥산 억새축제 기간'으로 천 고지 너머에 해가 질 무렵에 낙조에 반사되며 흔들리는 억새의 물결은 산꾼들을 그곳으로 불러들이기에 충분하다.  9인승 카니발은 7시가 되어 사당을 출발해서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를 버스전용차로로 신나게 달린다. 미안한 얘기이지만 일반차선은 아침부터 주차장이다. 주말 아침부터 단풍 나들이게 나선 수많은 승용차량들은 경부선 이선 영동선이건 거의 움직이지를 않는다.  

 '민둥산 억새축제 기간'으로 천 고지 너머에 해가 질 무렵에
낙조에 반사되며 흔들리는 억새의 물결은
산꾼들을 그곳으로 불러들이기에 충분하다.


민둥산(1119m) 억새마을 주차장을 들머리로 산행을 시작한다. 산 정상은 강원도 산들이 그러하듯이 천 고지가 넘는다. 하지만 들머리의 높이가 500 m 정도이다 보니 약 600m만 오르면 정상에 오른다. 서울에서 치자면 관악산(632m) 정도를 오르는 높이다. 산꾼들에게는 어렵지 않은 높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만만하지 않은 높이다. 하지만 들머리를 오르는 방문객들의 신발은 다양했다. 대부분 등산화를 신었지만 개중에는 운동화도 보이고 샌들이나 슬리퍼까지 보였다. 혹시나 등산 중에 발목이 다치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었다. 나도 며칠 전에 민둥산 억새풀 구경하러 간다는 소리를 들었들 때,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 가는 기분이 들었는데 아마 다른 이들도 그런 마음으로 산행을 준비한 듯하다.


오백 미터를 걸어 급경사(90분 소요)와 완경사(100분 소요)의 갈림길에서 왼쪽 완경사를 선택했다. 하지만 말이 상대적으로 완경사이지 계속되는 경사에 땀은 이마에서 얼굴을 타고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낙엽으로 연신 떨어진다. 그러던 와중에도 역시 강원도의 깊은 산속 공기은 거친 호흡을 통해 찌든 나의 폐를 계속해서  정화시켜 나를 건강하게 해준다. 정상에 가까워지자 나타나는 바람에 흩날리는 억세풀 무리의 흰 회백 향연은 지친 육신에 엔돌핀을 폄프질 한다. 정상에 오르니 주위에 억새풀의 군락이 멀리 강원도의 깊은 산들을 뒤로하고 바람에 날려 춤을 추고 있다. 자연은 나를 감동시켜주고 있지만 정상석 부근에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은 뱀처럼 늘어뜨린 기다란 줄이 조금은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일행은 정상석이 살짝 보인 곳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정상데크에서 준비한 점심을 먹고 서둘러 하산후 귀경길에 오른다.

일행은 정상석이 살짝 보인 곳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정상데크에서 준비한 점심을 먹고 서둘러 하산후 귀경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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