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벌써부터 눈물샘이 움찔움찔합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 남성호르몬이 줄고 여성호르몬이 많아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와의 아픈 기억이 있어서 있지는 모르겠네요. 아주 갓난아기 때야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이후로 기억의 조각들은 뜨문뜨문 생각이 납니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 집에 놀러 가 보면 대개는 여러 형제, 자매들이 복잡 복잡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 집에 오면 달랑 나 혼자 밖에 없어서 남들보다 혼자 있던 시간이 많았던 걸로 기억됩니다. 그러다 보니 그때부터 혼자 노는 노하우가 쌓여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러 노는 것뿐만 아니라 혼자서도 잘 놉니다. 감사한 일이죠.
좀 더 다행인 것은 어디 가서 외동아들이라는 티가 나지 않도록 엄마의 빗자루는 때가 되면 나의 등짝을 스매싱했고 그때마다 외가댁으로 도망갔던 생각이 납니다. 커서 생각해보니 엄마의 스매싱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부친을 향한 외침이었던 걸로 이해를 했습니다. 공무원 생활을 하는 아버지는 집에도 가끔 들어오고 월급도 그다지 넉넉하지 않았으니 엄마 입장에는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저를 낳았을 때가 23살 이셨고 학부형이 되셨을 때가 서른 살도 안된 나이었었을 테니까요. 그래도 저는 초등학교 때 엄마가 학교에 오시면 신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친구 엄마들보다 훨씬 이쁘고 세련미 뿜 뿜 났기 때문입니다. 반 친구들이 부러워하기도 했고요.
친구 엄마들보다 훨씬 이쁘고 세련미 뿜 뿜 났기 때문입니다.
저를 키우면서 어려운 형편에 가르쳐 주고 싶은 건 뭐든지 해줘야 한다고 여러 가지 학원을 다니게 해 주신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듯합니다. 그동안 꾸준히 자기 계발을 했고 요즘도 삼식이 소리 안 듣겠다고 악착같이 요리학원을 다니고 있으니까요. 올 한 해를 되돌아보면 변화가 많았네요. 평생 엄마 옆에서 지지고 볶으면서 티걱태걱 하시던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오십이 넘은 중년의 아들은 회사생활 30년이 되어 퇴직을 앞두고 있으니 말입니다. 다른 할머니들은 평생 지긋지긋하던 남편이 죽이면 속 편하게 남은 생을 산다고도 하는데 엊그제 아직도 부친의 그리워하시는 엄마를 보니 가슴 한편으로는 먹먹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래도 엄마는 씩씩하게 잘 살아 내실 거라 믿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인데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늘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나름 매일 아침마다 책을 낭독해서 카톡으로 보내드리는 '구십은 괜찮아'의 에피소드들은 사실 저에게도 많은 깨달음을 주고 있습니다. 책의 주인공인 봉여사의 일상을 통해 우리 엄마, 강여사님의 일상도 생각해보고 봉여사의 아들을 통해서 저의 모습도 되돌아보곤 합니다. 벌써 에피소드가 50일째로 접어들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만 끝나는 날까지 열심히 녹음해서 보내드릴게요. 저에게 건강을 위해 등산의 길을 열어주셔서 아직까지 건강한 육체를 유지하고 있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항상 갖고 있습니다. 요즘 엄마의 무릎과 허리가 좋지 않으셔서 걱정이 많이 됩니다. 부디 건강 유지하시고 매일매일 행복한 날들이 되시길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