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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Oct 31. 2022

어머니의 딤채

100일 글쓰기(34일 차)

일요일 아침 일찍 스마트폰 전화벨이 울렸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누가 전화를 했을까 하는 생각으로 전화기 창을 보니 모친이셨다. ‘뭔 일이 있는 건가’ 하는 생각으로 전화를 받았다. 모친은 다급한 목소리로 딤채를 옮겨야 하니 바로 상계동으로 올 수 있냐는 것이다. 앞뒤 상황설명이 안되다 보니 바로 의사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오전에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스크린 골프 월례회가 있었고 오후에는 요리학원 수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집에서 본가까지 이동시간을 고려하면 짬을 내기가 쉽지 않을 듯했다.  정말 급한 건이라면 사전 약속을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모친은 다급한 목소리로 딤채를 옮겨야 하니
바로 상계동으로 올 수 있냐는 것이다.


모친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파트에서 개별난방 공사를 하기로 해서 다용도실에 일정 공간을 만들어야 하고 며칠 내로 공사가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모친에게 다음날인 월요일에 방문해서 딤채를 옮겨드려도 되는지에 대해 여쭤보았고 아파트 관리소로부터 공사일정이 화요일이니 월요일에 옮겨도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 왠지 가슴이 조금 아리었다. 부친이 돌아가신 올해 초부터  모친의 생활패턴이 많이 바뀌셨기 때문이다. 그래도 웬만한 건 혼자 스스로 하시지만 이번처럼 힘을 쓰는 일이 생기면 주위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토요일 하루 종일 등산으로 인해 허리에 무리가 되고 일요일엔 스크린 골프와 요리 강습 참여로 하루 종일 서있었더니 학원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허리를 똑바로 펼 수가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다. 누군가 “백수가 노느라고 ‘과로사’ 한다” 고 했던 말이 실감이 되었다. 일요일 저녁에서야 귀가해서 반신욕으로 허리 통증을 완화시키고 잠시 누워있는데 아들이 불쑥 들어와서 어깨에 담이 걸렸다고 풀어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 소리를 거실에서 들은 아내는 소리친다. “줄을 서시요~” 아니 이게 뭔 상황인가. 정작 안마가 필요한 건 나인데 말이다. 아들은 내 허리를 주물러주고, 아내는 아들을, 그리고 나는 아내를 주물러 주는 것으로 타협을 했다.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허리 통증이 전날보다는 훨씬 좋아졌지만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음으로 미룰 수도 없는 일이다 보니 차를 몰아 상계동 본가로 이동했다. 다용도 실의 상황을 확인한 결과 딤채의 하단부의 앞 뒤 커버를 떼어내고 다용도실 문짝도 떼어내면 가까스로 통과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비록 아직까지 허리에 통증이 찌릿찌릿 하긴 했지만 나름 신속하게 나사들을 풀고 무사히 다용도실 문을 통과시켜 소기의 목적을 달성시켰다. 밤새도록 고민을 하셨다는 모친의 답답했던 고민을 해결해 드린 것이다. 나름 뿌듯한 감정을 느끼며  앞으로 좀 더 자주 들려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자주 들려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식사는 모친과  쭈꾸미 보리밥 정식을 먹고 동네 한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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