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22일 차)_사진
오래된 흑백 사진으로 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꼬마 아이는 머리에 고글처럼 커다란 물안경을 걸치고 양손으로 물놀이 장난감이 들어있는 비닐백을 입을 쫑긋 모으고 신나는 얼굴로 들고 있다. 귀여워 보이는 아이는 민소매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하얀 양말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신발을 신고 있다. 아이의 오른쪽엔 영화배우처럼 생긴 핸썸한 아빠와 왼쪽에는 활짝 핀 꽃처럼 미인인 엄마가 서있다. 아이의 아빠와 엄마는 밑단을 한 뼘씩 접어 올린 청바지를 커플 룩으로 입고 엄마는 살짝 미소를 짓고 있는데 아빠는 얼굴이 굳어 있는 걸로 봐서 아이의 외가댁에서 야외 나들이 가지전에 단체로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
외가댁에서 야외 나들이 가기 전에 단체로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
사진의 왼쪽 건물에는 ‘정부 쌀파는 집’이라는 간판이 붙어있고 뒤쪽에는 ‘삼화 여관’이라는 간판도 보인다. 이곳은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 나의 외갓집이고 내 뒤에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첫째 외삼촌, 둘째 외삼촌, 막내 외삼촌 그리고 작은 이모까지 모두 9명이 있다. 큰 이모는 출가해서 참가를 못하신 거 같고, 셋째 외삼촌이 안 보이는 걸로 봐서 아마도 사진을 찍고 계시지 않을까 싶다. 3녀 4남을 슬하에 두신 외가댁은 대가족이었고 당시 내가 첫 번째 손주이다 보다 모든 식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물론 12년 터울인 친 손주가 태어나서는 나의 귀여움은 친 손주에게 인계되었다.
외할아버지는 중국 만주에서 체육교사를 하시다가 해방 이후에 서울에 터전을 잡고 쌀가게를 운영하며 모든 식구들을 키우셨다. 새벽에는 늘 남산에 올라 체력 운동을 하셨다. 한 번은 할아버지를 쫓아 남산에 있는 체육운동기구가 있는 곳에서 철봉과 링을 하시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링을 타고 하늘을 거의 날아다니다시피 하시는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있다. 여러 신문사에서 ‘남산 기관차’라는 별명으로 몇 차례 인터뷰를 하시기도 했다. 할아버지를 쫓아서 북창동에 있는 중국식당에 가면 늘 신났다. 중국말로 주문을 하는 할아버지가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사진 속의 할아버지는 60대 초반이셨지만 벌써 이마가 훤하시다. 그 유전이 외삼촌들을 거쳐 나에게 까지 왔다. 하지만 유전인걸 어찌하랴!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이미 고인이 되신 분들이 그리워진다. 하지만 사진 속에서는 모든 가족들이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어서 너무 좋다. 더군다나 등산인지 물놀이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디론가 이제 막 여행을 떠나려고 가족 모두 마음이 부풀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어린 꼬맹이의 기분은 얼마나 좋았을까를 생각하니 흐뭇한 생각마저 든다.
어린 꼬맹이의 기분은 얼마나 좋았을까를 생각하니 흐뭇한 생각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