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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Aug 11. 2022

5천 원짜리 점심

명동성당 루르드 성모회 미사

8월의 한가운데 휴가 중에 모친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들, 별일 없으면 내일 명동으로 나와라." 회사에서 퇴직을 권고받고 누리는 마지막 휴가기간 중이라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오랜만에 모친과 점심을 먹을 생각으로 약속시간을 정했다. 그런데 약속시간을 10시 반으로 이야기하시고 함께 11시 성당 미사에 참여하자고 제안하셨다. 요즘 들어 코로나 핑계로 평소 일요일 방배동 본당 미사도 잘 안 나가던 차에 본의 아니게 명동성당 평일 미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모친은 매주 상계동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지만 한 달에 한번 두 번째 수요일 11시에 명동성당 문화관 '꼬스트홀'에서 '루르드(Lourdes) 성모회 미사'를 드린다고 한다. 모친으로부터 수차례 '루르드'라는 말을 들어보긴 했지만 발음도 어렵고 관심도 없어서 기억도 못 하다가 실제로 '루르드 성모회 미사'를 참여하게 된 거다.


"아들, 별일 없으면 내일 명동으로 나와라."


'루르드'는 프랑스 남서부 피레네 산맥 북쪽 해발 420m 산기슭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1858년경 한 소녀에게 '성모님'이 나타나셔서 기적을 행하시고 그 후로 유명해진 천주교인들의 성지순례의 명소가 되었다.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자기 정화와 힐링의 휴양지로도 매일 수천 명의 방문객이 몰려드는 곳이다. 국내에서는 1960년대 초  몇몇 신자들의 가족이 모여 루르드 성모님을 가정의 주보로 모시고, 매년 11월 11일 명동성당 성모동굴 앞에서 촛불을 봉헌하고 묵주기도 5단을 드린 후 가정 미사를 봉헌한 것이 루르드 성모 회의 시작이 되었다. 그 모임에 모친도 오랫동안 참여하고 활동을 해 오신 것이다. 미사에 참여하신 분들이 거의 칠순의 멋쟁이 여사님들이 대부분이었다. 미사를 마치고 전 회장님께서는 함께 간 아내의 손을 꼭 붙잡고 젊은 사람이 왔다고 너무 기뻐하셨다.


미사 후에 '꼬스트홀'을 나와 반대쪽 건물의 꼬불꼬불 미로 같은 곳을 통과해서 명동성당 구내식당으로 갔다. 모친이 미리 오천 원짜리 식권을 사두셨다. 보통 점심시간에 일반 식당에서 밥을 사 먹으면 8천 원에서 1만 원 정도 지불한다. 그에 비해 5천 원이라면 음식의 수준이 그다지 높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 음식을 받아보고는 기대 이상이었다. 오늘의 메뉴는 한식으로는 육개장, 양식으로는 카레라이스가 제공되었다. 카레라이스는 나의 최애 음식이기도 해서 양식을 선택해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성당에 미사 보러 온 신자들도 있지만 주위 회사에서도 점심을 먹으러 성당 구내식장을 이용하는 듯, 안쪽 테이블 자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들 먹으라고 모친은 별도로 밥 한 공기를 더 챙겨서 건네주셨다. 칠순의 노모에게는 오십의 아들이 아직도 챙겨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신다.


칠순의 노모에게는 오십의 아들이 아직도 챙겨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신다.


푸짐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바로 근처의 성당 지하몰에 위치한 카페로 갔다. 카페 옆에 있는 '밤식빵'으로 유명한 빵집도 지나쳤다.  모친은 명동성당 미사 후에 항상 그곳에서 '밤식빵' 사셔서 내가 본가에 방문하면 선물로 주신곤 했다. 내가 먹어본 밤식빵 중에서는 최고이다. '빵반 밤반'으로 밤이 가득 들어 있다. 이젠  빵집의 위치를 알았으니 다음부터는 내가 모친에게 '밤식빵' 사다 드려야겠다. 카페에서 뜨거운 커피 3잔을 시키고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가량 수다를 즐겼다. 얼마 전부터 모친의 명동 나들이에 함께 해보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좋은 기회가 됐다. 모친은 상계동에서 명동까지 꾸준히 명동성당도 다니시고 남산 둘레길도 주기적으로 걸으신다. 최근 읽고 있는 <구십도 괜찮아 (김유경 지음, 2021)> 봉여사처럼 강여사님도 구십까지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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