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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Aug 13. 2022

소중한 인연, 행복한 나무놀이

전라도 남원시 나무공방

전라남도 남원은 '춘향전(조선시대 영조, 정조 시대에 쓰인 한국의 고소설)'의 배경으로 알려진 도시이기도 하지만 현대인들에게는 '남원 추어탕'으로 더 익숙한 지역이다.  이곳에 '행복한 나무놀이'라는 공방이 있다. 공방을 알리는 포스터에는  선글라스를 멋지게 쓰고 찍은 공방 주인장의 사진과 함께 홍보문구가 써져있다. '지리산과 섬진강이 좋아 남원으로 귀촌한 행복한 나무놀이입니다. 친환경 두릅, 고추와 텃밭농사를 짓고 캄포 나무 도마와 소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주인장은 평생을 서울에서 살다가 5년 전에 남원시 수지면에서 귀농생활을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자동차 업계의 선배이자 사석에서는 형님이라고 부른다.


지리산과 섬진강이 좋아 남원으로 귀촌한 '행복한 나무놀이'입니다.


선배와 내가 인연을 맺은 것은 약 10년 전쯤이다. 내가 근무하던 회사에서 도요타 자동차를 해외에서 직수입 판매를 했고 그 판매 차량들이 국내에서 대대적인 자동차 리콜이 시행되었다. 판매했던 직수입 차량의 고객 불만으로 난감해 있던 때, 당시 도요타 코리아의  서울지역 공식 서비스 딜러의 총책임자였던 그 선배를 소개받았다. 투박한 정비 현장과 거친 고객들을 상대하기에는 어울릴 거 같지 않는 부러움과 선천적으로 친철함을 느끼게 하는 인상이었다. 그 뒤로 여러 차례 교류를 하던 중에 선배께서 은퇴를 하고 귀농생활을 시작했다. 귀농생활 초기에 다시 한번 내가 쓴 <자동차 서비스 KPI, 2018년, 골든벨>이라는 책의 감수를 통해  두번째 인연을 맺는 동시에 자동차 업계의 후배들에게는 선배가 갖고있는 정비공장 운영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해 주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선배의 촌생활은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있었고  한번 직접 방문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나의 버킷리스트에 올려두었다. 그러던 중에 올해 여름휴가중에 용기를 내서 전화를 했고 흔쾌한 승낙을 받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1 2일의 여행을 준비하고 남원을 향해 세차게 내리치는 빗줄기를 뚫고 서울을 출발했다. 원래 계획은  사람 모두 등산을 좋아했던지라 지리산 자락을 가볍게 등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계속 내리는 빗줄기로 인해서 직접 산행 대신 차량을 이용해 ‘정령치’, ‘선운 폭포 방문해서 어머니의 품과 같은 거대한 지리산 끝자락에서 산속의 나무 냄새와 정취를 온몸으로 함께 했다. 귀갓길에 마트에 들러 생선회와 새우 감바스, 표고버섯과 새송이 버섯 등을 구입했다.


몇 달 전에 배운 요리학원 강좌와 백패킹을 통한 캠핑요리 경험을 되살리며 선배의 주방을 빌려서 몇 가지 요리를 만들었다. 우선 표고버섯을 끓이고 식혀서 칼로 썰어서 숙회를 만들어 소주와 맥주를 3:7로 섞은 ‘웰컴 드링킹(welcome drinking)을 만들어 한잔씩 쭈욱 들이켰다. 새우 감바스에 넣을 양파는 선배의 텃밭에서 직접 재배된 싱싱한 유기농 양파로 썰어 넣었다. 그냥 씹어 먹어도 달짝지근한 맛이 난다. 역시 직접 재배한 농산물의 맛을 그 무엇이 따라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 음식과 함께 밭에서 갓 딴 깻잎과 고추를 공방으로 옮겨서 창가 너머 보이는 지리산을 또 다른 안주삼아 못다 한 이야기들을 했다. 어느새 해는 지고 산 위에 떠오른 보름달은 자연에서의 추억을 더욱 깊게 만들어 주었다.


다음날 7시에 기상하기로 해놓고 두 사람 모두 5시 즈음에 눈을 떴다. 나야 워낙 몇 년 동안 5시 기상이 습관화되어 있어서 그런다 치고 선배까지 나 때문에 잠을 설친 것이 아닌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 모두 건강을 위해 ‘소식’을 하고 있어 부담없이  아침 식사를 거르고 전날 못한 산행을 대신해서 근처 동네산인 532m 인 교룡산으로 이동을 했다. 아무리 동네 산이라고는 하지만 역시 '산은 산이다'라는 말처럼 땀을 한 바가지씩 흘렸다. 전날 비도 오고 습한 데다가 날씨까지 30도를 오르내리다 보니 헉헉 거리며 산을 올랐다. 하지만 역시 흠뻑 땀을 흘리고 정상에 올랐을 때의 상쾌함이란 이루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거기다가 선배가 챙겨 온 시원한 캔맥주는 행복이 바로 우리 앞에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당장  퇴직을 앞두고 미래를 고민하는  나에게 선배의 소중한 경험담과 조언들은 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여서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특히 ‘행복추구’ 관점에서 기존의 패러다임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힘들고 지친 도시생활에 삶의 힐링 장소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내려오라는 선배의 말씀이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더 큰 희망으로 내게 다가왔다. 남원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현지인들만 간다는 ‘남원 추어탕’ 맛집에서 원기회복을 하고 별도 포장도 하고 귀경길에 올랐다.  이곳 남원의 선배 공방은 이미 나의 '케렌시아(Querencia, 안식처)가 되어 있었다.

이곳 남원의 선배 공방은 이미 나의 '케렌시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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