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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Dec 29. 2022

내가 살던 동네는

100일 글쓰기(93일 차)_우리 동네

내가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는 회현동,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방배동이다. 물론 그 사이에 본가 근처인 상계동에서도 몇 년간 살았고  직장 때문에 부산 구서동에서도 한 오 년 살았지만  그래도 내 삶을 돌아보면 나머지 반은 회현동에서 그 나머지 반은 지금의 방배동에서 살았다. 누구에게나 그러하듯이 어린 시절에 살아던 동네에는 추억들이 많다.


내가 회현동에 어린 시절, 청년시절을 보낸 이유는 지금 생각해보면 외갓집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는 중국 만주에서 체육교사로 근무하시다가 한국으로 이전해서 터전을 잡으신 곳이 바로 '서울시 중구 회현동'이기 때문이다. '회현동 1가 147번지 정부 쌀파는 가게'가 외조부모가 모친을 포함해서 7남매를 키워낸 곳으로 우리 집은 항상 외가댁 근처에서 반경 1km를 벗어나지 않았다.


외가댁의 아래 동네는 '남대문 시장'이고 윗동네는 '남산 중턱'이다. 내가 살던 회현동 시범아파트는 남산중턱에 있다 보니 내가 뛰어놀던 곳은  남산에서부터 남대문 시장 까지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장딴지가 굵어졌다. 지금도 친구들이 내 장딴지를 보면 '천하장사 이만기' 장딴지 같다고 놀리곤 한다. 나의 놀이터 주무대는 '시범아파트' 였다.

'천하장사 이만기' 장딴지 같다고 놀리곤 한다.


지금은 1970년에 지어진 아주 오래되고 낡은 아파트지만 내가 꼬맹이 시절인 당시에는 최신식 아파트였다. 남산 중턱에 지어지다 보니 출입구가 여러 층(1층, 3층, 6층, 8층)의 복도식 구조여서 아이들에게는 최적의 놀이터였다. 아파트 복도를 여기저기 뛰어다니면 술래잡기, 다방구, 구슬치기, 딱지치기 놀이를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가끔 남산 드라이브를 가면 근처 카페에서 한 잔 마시면 옛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지금 살고 있는 방배동은 결혼 이후에 자리를 잡게 된 곳으로 어쩌면 나보다는 자녀들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회사 이직으로 인해서 부산에서 살다가 올라와서 지금까지 방배동 아파트에서 이십 년 정도를 살았다. 근처에 서울대학교와 법원이 있다 보니 교수님들과 법조계에 종사하셨던 분들이 많이 사는 조용한 아파트이다. 아이들의 친구 부모들도 대학 교수님들이 많아서 그런지 어느 날 꼬맹이 아들에게서 질문이 들어왔다.


"아빠, 아빠는 왜 교수님이 아니야?" 난, 그냥 빙그레 웃으면서 속으로 말했다. '미안하다. 아들아! 아빠가 가방끈이 짧아서'. 다행히 이곳에서 아들도 딸도 모두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마치고 회사까지 취업한 상태이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햇수로 30년이 넘는 복도식 아파트이다 보니 겨울만 되면 춥고 수도 계량기 동파가 걱정된다. 강남에 산다고 친구들은 부러워하는데 나는 화장실 2개 있는 따뜻한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

 "아빠, 아빠는 왜 교수님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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