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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Oct 30. 2022

요리는 배워서 뭐한담

100일 글쓰기(33일 차)

중년의 남자 중에 쌀을 씻어 밥을 지을 줄 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 프로나 될까. 아마도 한자리 수 정도나 될까 싶다.  은퇴 후에 삼시 세끼를 아내에게 의존하는 불쌍한 '삼식이'가 되지 않기 위해 작년부터 요리학원에 등록을 하고 한식 기초과정들을 수료하고 지난주부터 '일본 가정식 과정'을 수강 신청했다. 수강시간은 매주 일요일 오후 2:30부터 6:30까지 4시간 동안 9회 차 과정으로 진행된다. 주로 하루에 3개 정도의 요리를 선생님이 설명하고 실습을 보이고 각자 조리를 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4시간이라는 시간이 빠듯할 정도로 스피디하게 수업이 진행된다.  일요일 오후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서 소파에 누워 TV를 보면서 편안하게 한주를 마무리할 시간대이다. 요리 선생님의 말을 빌자면 수강생이나 선생님이나 모두에게 힘든 '죽음의 시간'이다.

은퇴 후에 삼시 세끼를 아내에게 의존하는
불쌍한 '삼식이'가 되지 않기 위해


"일단~~~ 은  파를 써시고요, 이단~~~ 은 파를 프라이팬에 볶습니다.", " 파를 써실 때는 손가락을 쭉 표시면 고기의 양이 많아지니 손을 오므리고 써셔야 합니다." "칼날이 위험하니 혹시 빨간색 천연 소스가 나오지 않도록 칼날을 조심해야 합니다." 같은 이야기들을 조리 시범을 하면서 숼세 없이 이야기한다. 마치 개그 프로그램의 요리코너 같은 느낌이다. 수강생들은 끼득끼득 웃기 바쁘다. 한참 웃다 보면 몇 가지 중요한 소스나 조리방법을 지나쳐 버릴 때도 있다. 그래도 수강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선생님 말대로 요리 경연대회에 나갈 것도 아니고 요리 자격증을 준비하는 반도 아니다 보니 그냥 편하게 참가하고 맛난 요리 몇 가지 만들어 봤다는 경험만으로도 충분하다.


지난주에는 감자크로켓과 닭무침을 만들어서 집에 가져가니 식구들이 저녁식사를 안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감자고로케의 모양이 그다지 일관성 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먹어보니  그런대로 먹을 만을 했다. 나야 채식을 하니 닭무침은 먹지 않았지만 아들내미가 쩝쩝거리면서 잘도 먹는다. 오늘의 메뉴는 '니쿠자가(소고기 감자조림)', 유부 어묵 나베 그리고 '가비츠롤(양배추 롤찜)'이다. 이름부터가 생소하다 보니 지난주에 나눠준 레시피 노트를 봐도 쉽게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았다. 세 종류의 요리 모두 '가쓰오 부시' 육수를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소고기 감자조림과 유부 어묵 나베는 동시에 요리 시범이 진행되어서 어느 재료가 어느 요리에 사용되는지 헷갈렸다. 네 시간 동안 정신없이 요리를 만들고 가져온 용기에 담으면서 생각했다. '아니 이걸 집에 가지고 가면 먹을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도 식구들은 학원에서 끝나서 귀가하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크한 딸내미는 맛을 보더니 또 한마디 한다.
"먹을 만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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