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놀러 가면 항상 가지고 가는 것이 필름이 들어간 아날로그 카메라였다. 그날로 며칠뒤면 카메라를 가지고 갖던 친구는 사진관에 가서 필름을 현상하고 종이사진을 한 뭉터기를 찾아온다. 그 사진 뒷면에 현상하고 싶은 사진을 골라 자기 이름을 쓰고 그걸 하나하나 두루마리 필름과 대조하며 추가로 현상할 사진의 개수를 검은색 색연필로 써넣는다.
그 필름을 다시 사진관에 맡기고 나서야 각자 원하는 사진을 본인의 앨범에 꽂아 넣을 수가 있다. 그렇게 하나하나 모아 온 사진들로 집에는 사진 앨범에 한 권, 두권 늘어나더니 결국은 열 권 정도까지 되어 책장의 한 칸을 모두 차지하고도 자리가 모자란다. 나도 거의 30년 동안 앨범을 보관하다가 얼마 전에서야 그 많던 사진들과 앨범을 정리했다.
'곤도 마리에 여사' 덕분이다. 그녀가 쓴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2012, 더난출판사>을 재작년 초에 읽고 나서 집안의 오래된 물건들을 모두 다 버렸다. 앨범사진도 그때 버렸다. 사진을 보았을때 가슴에 뛰는 것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리고 보니 달랑 조그마한 종이박스 1개와 사진달력 3개만 남았다. 달력은 보통 날짜가 바뀌면 당장 쓰레기통이지만 사진달력은 남겨두었다.
달력에 들어간 사진들이 주로 자녀들이 어렸을 때 찍은 사진들이기 때문이다. 예전 회사에 근무할 때 신규사업팀으로 생긴 스코피(skopi)라는 부서에서 인터넷으로 달력 만들어 주는 사업을 했었고, 나는 매년 그 상품을 구입해서 탁상용 달력을 만들었다. 2006년, 2007년, 2008년 달력이니 아이들이 모두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다 큰 아이들은 가끔 얘기한다. 자기들은 어렸을 때 부모랑 여행 다녔던 기억들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달력들을 증거사진으로 보여준다. 놀이동산, 박물관, 리조트, 바닷가, 썰매장, 스키장, 수영장, 등산 약수터 등 에서 찍은 사진들이 남아있어서 다행이다. 역시 사람들은 애건 어른이건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기억한다.
첫 번째 사진은 용인 에버랜드, 커다란 우리 안에서 꼬맹이 딸내미가 오빠랑 같이 지푸라기를 양에게 먹이려는 순간이다. 도심에서 자란 아이들의 진지함이 느껴진다. 두 번째 사진은 여름휴가를 맞아 제주도 바닷가에 놀던 순간으로 아이들의 환한 웃음이 너무 이쁘다. 마지막 사진은 부모님을 모시고 워커힐 호텔 뷔페에 갔다가 부모님과 아이들을 찍은 사진이다. 오랜시간이 지나도 그때의 감정이 다시 살아난다.
모두다 나에겐 제일 소중한 가족들이다. 지금은 어느새 성장해서 취업한 아이들의 점점 굳어져 가는 얼굴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어린 시절의 환한 미소가 그리워진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자녀들도, 지금의 자녀들도 그리고 미래의 자녀들도 언제까지나 나의 소중한 자녀들이다. 언제까지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