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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Jan 09. 2023

부르뎅 아동복 거리(남대문 시장)

100개 글쓰기(4회 차)

아니, 왜 내 머릿속에는 '부르뎅'이라는 단어가 잊히지 않는 걸까. 발음하기도 어렵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그 단어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모친의 손에 이끌려 따라갔던 남대문 시장의 아동복 이름이다. 지금 보다는 훨씬 말랑말랑했던 나의 뇌 속에 모친은 몇 날 며칠을 그 단어를 심어 놓았었나 보다. 어린 시절 흑백사진에는 늘 깔끔하게 입고 있는 꼬맹이의 모습이 있다. 


공무원 박봉, 없는 살림에 아들 하나는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으셔서 남대문 시장의 명품 아동복을 사입히시고 좋아하셨을 모친의 마음을 이제는 조금이해가 된다. 얼마나 세월이 흘렀을까. 노모와 함께 남대문 시장 아동복 거리를 방문했다. 물론 아동복을 사려고 간 것은 아니고 부친기일을 맞아 남대문 시장 꽃상가에 가는 길에 잠시 점심을 먹으려고 근처 식당을 방문한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남대문 시장에서 쌀가게를 운영하시면서 7남매를 키워내셨다. 그러다 보니 모친은 나보다 남대문시장에 더 친숙하시다. 나도 나름 어린 시절 대부분을 큰길 건너 회현동에서 살다 보니 동네 놀이터처럼 뛰놀던 곳이지만 모친에 비하면 풋내기 수준이다. 칠순이 넘는 모친은 나를 데리고 갈치조림 맛집을 데리고 갔다. 


남대문 시장 '갈치 골목'은 가본 적이 있지만 그곳과는 다소 떨어져 있는 이곳은 처음이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가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작은 골목의 끝집이다. 아마도 오래된 단골들이나 알 수 있는 찾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오래된 맛집처럼 보였다. 모친 말에 의하면  냉동 갈치가 아니라 생갈치라서 더 맛나다고 하신다. 그래서 그런지 공깃밥을 추가로 시켜서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점심식사 후에 고불고불한 미로 같은 길을 통과해서 남대문시장 꽃상가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얼핏 예전에는 '도깨비 상가'라 불리던 수입도매상가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작년에 이맘때 즘에 돌아가신 부친의 단골가게들이 그곳에 있다. 나도 몇 번 부친을 따라가 본 적이 있다. 1970년대 이곳의 물건들은 대부분 미군부대로 부터 비공식적인 유통을 통해서 공급되었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어찌 되었던 한 가지 확실한 건 '미제'였고 맛이 있었다는 것이다. 도깨비 시장에서 부친이 구입한 햄과 소시지, 초콜릿, 체리 등은 어린 꼬맹이에게는 미국문물의 접점이었다. 부친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모친과 남대문시장 데이트를 즐기셨고 항상 그곳에서 수입물건들을 사 오셨다. 모친과의 부르뎅, 부친과의 도깨비 시장, 남대문 시장은 나에겐 추억의 보물창고이다. 꽃을 구입하고 오후에는 모친의 손을 잡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모친과의 부르뎅, 부친과의 도깨비 시장,
 남대문 시장은 나에겐 추억의 보물창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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