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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Feb 19. 2023

유적 안내문 의뢰를 받고

100회 글쓰기(26회 차)

전라북도 남원으로 귀농한 선배로부터 글을 하나 써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선배는 그 지역 출신이 아님에도 귀농한 지 5년 만에 마을이장이 되어 이것저것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그중에 하나로 마을에 있는 방치된 유적물에 안내문을 설치해 달라고 남원시청에 요청했다. 시청에서는 해당 문구를 마을에서 작성해서 제출하라고 했고, 지역출신 향토작가들에게 부탁했다가 잘 진행이 안돼서 내게로 급하게 연락을 한 것이다.  


일요일 오후 난데없는 부탁이긴 했지만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에 주위로부터 받은 첫 번째 글쓰기 오더이다 보니 재미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보람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의 제안을 오케이 하고 선배로부터 받은 정보와 인터넷 자료를 조사해서 초안을 만들었다. 내가 쓴 안내문을 보고 누군가는 그 유적지에 대한 이해를 높일 거라는 생각을 하니 왠지 벌써부터 흥분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호석(虎石호랑이 석상)의 유래


   호랑이는 예로부터 잡귀를 막아주고 재앙을 물리치는 영물로 여겼지만, 백성들에게는 ‘호환(虎患)’이라고 불리는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조선시대 초기에만 해도 많은 호랑이가 산속에서 살았다. 특히 깊은 지리산에 호랑이들이 많이 살았으며 남원시와 인접한 산을 ‘호두산(虎頭山)’이라고 불렀다. 호랑이의 기운이 세고 산의 형상이 호랑이의 머리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호두산에는 호랑이가 많은 만큼 남원 백성에게는 호랑이의 습격에 의한 피해도 끊이지 않았다.      


  조선 영·정조 시대 풍수지리에 능했던 전라감사 이서구(1754~1825년)가 남원을 방문했을 당시 백성들의 ‘호환’에 대한 탄원을 듣고 호랑이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호두산의 이름을 ‘견두산(犬頭山, 개머리산)’으로 바꾸고 호두산의 맥이 내려와서 뭉친 동네의 이름도 ‘호곡리(虎谷里)’에서 ‘호곡리(好谷里)’로 바꾸었다. 그 이후로 ‘호환’이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견두산으로 이름을 바꾼 후에 성난 개가 남원 땅을 노려보는 형상이 되고 들개떼가 다시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었다.      


이에 이서구가 남원시 세 곳에 돌로 된 호랑이 석상을 세워 견두산을 바라보게 하여 들개무리의 피해도 호환도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 만들어진 호석은 광한루원(남원시 요천로 1447), 몽심재 고택(남원시 수지면 내호곡 2길 19) 그리고 이곳 고정마을(남원시 수지면) 옛 마을회관 옆에 남아 있다. 살아있는 호랑이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호랑이의 영험한 기운은 이곳에 깃들어 많은 인재와 영웅들을 배출하고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참조:5백 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2002년, 푸른 역사 출판사. 조용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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