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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May 05. 2022

내 고향은 서울특별시

고향

내 고향은 서울특별시이다. 박완서 작가의 성장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저자가 그렇게 살기를 원했던 서울. 그것도 서울 4대 문의 하나인 남대문(숭례문) 근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과 뛰어놀던 곳은 남대문 시장이다. 상가 골목 사이사이를 누비고 다니고 여러 종류의 온갖 상품들을 보면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는 의류매장들이 주를 이루었고 다른 한쪽은 안경 도매상들과 잡화상들이 운집해 있었다. 그 당시 제일 흥미를 끌던 곳은 시장 안의 남대문 극장이다. 1년 내내 3류 에로물을 상영했었고 입장은 불가했지만 간판만 봐도 얼굴이 빨개지던 시절이었다.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 내가 태어나고 군대 제대할 때까지 성장하던 곳이다. 외가댁은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소년 시절 어머니에게 혼이 나면 울면서 뛰쳐나가 외할머니에게로 도망가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머니의 형제자매는 모두 일곱분이다. 제일 먼저 결혼을 해서 나의 어린 시절, 외가댁에는 이모들, 외삼촌들이 많았다. 명절 때면 친가에서 설을 지내고 다음날에는 외가댁에서 설을 마무리한다. 모든 외가 친척들이 며칠 전부터 음식을 준비하고 차례를 지내고 다른 친척들이 방문하고 또 다른 친척 어른들 찾아뵙고 한다. 어린 나이에 외삼촌들을 따라서 이곳저곳을 영문도 모른 채 쫓아다니곤 했다.


결혼 이후에 설 차례는 성당에서 미사로 대신한다. 안동 김씨 맏며느리셨던 어머니는 중년의 나이에 천주교로 개종을 하셨다. 아버지의 형제자매는 여덟 분이다. 맏며느리로서 설 명절이 얼마나 힘들고 스트레스였을지 짐작이 간다. 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때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는 군대 있을 때 돌아가셨다. 천주교 개종 이후로 부모님은 우리 식구와 함께 성당에서 차례상과 향을 태우면서 설(구정) 미사들 올린다. 당신의 힘든 시절을 생각해서 며느리인 아내에게 그 어떤 명절 음식 주문을 하지 않으신다. 미사 후에는 본가에서 떡국이나 만둣국으로 소박한 식사를 한다. 식사 후에 목사님이신 큰 외삼촌 댁으로 이동해서 추모 예배도 드리고 세배도 한다.


아내의 고향도 서울특별시이다. 설날 당일 오후에는 처가댁을 방문한다. 아내는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장모님은 설 명절에 방문하는 딸들과 사위, 손주들을 위해서 며칠 전부터 음식을 준비하신다.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노부부만 사시는 곳에 명절날 자식들이 방문하시는 것이 그렇게 좋으신가 보다. 칠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손수 게장을 만드시고 갈비찜, 잡채를 만드신다. 아이들은 외할머니 게장을 국내 최고로 친다. 아내와 처제는 장모님의 잡채를 너무 좋아한다. 아껴두시던 장인의 양주도 온더록스로 함께 한잔하면 어느덧 새해의 밤도 어둑어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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