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유품
부친은 패션니스트였다. 여든의 나이까지 지하철 택배 일로 경제활동을 하시면서 건강하게 일을 하셨다. 아침에 출근할 때 여러 옷과 모자를 고르시고 어머니께 심사를 받으셨다. 물론 대부분 모친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당신의 취향대로 문을 나선다. 아들은 옷에 관심이 없지만 아버지는 모든 옷을 손수 골라서 사셨고 때로는 어머니의 옷들도 사 오시곤 했다. 공무원 연금을 받으셨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궁핍하지는 않으셨지만 수입의 많은 부분을 의류 구매에 쓰신 거 같다. 철이 지나고 해가 지난 옷들을 버리시질 못했다.
부친의 유품 정리할 때 오래된 옷들이 예상보다 많이 나왔다. 100리터짜리 비닐봉지로 16개나 나왔다. 폐수거 옷들이 많으면 처분하기도 어렵다. 사촌 동생의 도움으로 수거하는 업체를 수배했다. 옷을 살 때는 개당 얼마씩 구매를 하지만 처분할 때는 킬로그램(kg)으로 한다. 연결된 옷 수거업체는 키로 그럼 당 250원이라고 했다.다음날 수거업체가 방문해서 옷을 모두 수거하고 건네준 돈은 25,000원이다. 거의 100킬로그램을 처분한 것이다. 구매할 때 가격을 추정한다면 도대체 얼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노인 부부가 사는 집에 우산을 몇 개나 필요할까. 추정하면 긴 우산과 접는 우산 포함해서 약 3개에서 4개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창고 정리는 하는데 우산이 50여 개가 나왔다. 무슨 우산이 그리도 많이 보관하셨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수입차 오픈식에서 얻은 고급 골프 우산도 거기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혹시 아버지는 비 오는 날 안 좋은 추억이 있으셨는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혹시 우산을 모으시는 취미가 있으셨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몇 개만 남겨두고 모두 1층 아파트 분리수거장으로 옮겼다. 아쉽게도 우산은 분리수거가 안돼서 돈을 주고 버려야 했다.
돈이 될 만한 유품들은 따로 정리했다. 잊고 있었던 1984년 LA 올림픽 주화가 10개나 있었다. 금이었으면 돈이 좀 되었을 텐데 아쉽게도 은화였다. 기념지폐도 10여 장 있었다. 일본 지폐, 중국 지폐 그리고 신기하게도 사우디 지폐도 있었다. 중국 지폐나 일본 지폐는 어느 정도 숫자를 가름할 수 있었지만 사우디 지폐는 숫자도 읽기 힘들었다. 우리 집의 중동 전문가를 불러서 판독을 해보니 1대 국왕(알 사우드) 때 지폐이고 액면가로는 몇 만원 수준이다. 현재 국왕이 7대 국왕(살만)이니까 상당히 오래된 지폐인 줄 알았는데 알사우드는 살만의 아들이란다.
아날로그 고급 카메라, 소형 필름 카메라, 쏘니 핸디캠은 온라인 중고 마켓에 판매하려고 업로드했다. 거의 20여전히 지난 부동산 관련 서류뭉치들도 일일이 확인해서 폐기했다. 왜 그런 서류들을 버리지 않고 갖고 계셨는지 모르겠다. 카펫, 이불세트, 장식용 도자기, 이사 올 때 가져온 설치 안된 에어컨 본체와 실외기 세트 등 이것저것 돈 내고 버리는 것만 해서 약 7만 원을 지불했다. 창고 대방출은 돈이 들어와야 하는데 물건과 함께 돈이 지불되었다. 그래도 공간적으로 훨씬 여유로워진 집이 쾌적해 진걸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