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요리
아버지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주말에 본가에 방문하면 부친은 직접 찌개나 국을 만드셔서 식탁에 올려주었다. 대부분은 내 입맛에 맞았지만 가끔은 너무 실험적이어서 젓가락이 가지 않은 날도 있었다. 평생을 어머님이 주방에서 가족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셨지만 노년에는 아버지가 주로 주방에서 봉사를 하셨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무작정 상경하여 중국집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으셨다고 얘기하신 기억이 난다. 그 후로 언젠가는 음식점을 하고 싶어 하셨지만 그 꿈은 어머니의 주방에서나 이루신 것이다. 아버지의 주 고객은 물론 어머니이다. 특히 어머니는 겨울철에 아버지가 끓여 주는 어묵탕을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끓여 주셨던 어묵탕을 그리워하셨다. 며칠 전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에 어묵탕 이야기가 나왔다. 여든이 넘는 나이에도 지하철 택배 일을 하셨던 아버지는 퇴근할 때 자주 마트를 들르셨다. 눈발이 날리는 추운 겨울날이면 롯데백화점 지하매장에서 알록달록한 어묵을 사 오신다. 몇 가지 야채와 일본식 육수 분말 수프로 얼큰한 어묵탕을 끓여서 어머님께 대접한다. 어머니는 그 맛을 잊지 못하시는 것이다. 갑자기 어묵탕을 끓여야겠다는 욕구가 올라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누구인가. 캠핑으로 다져진 자칭 어묵탕의 달인 아닌가.
국, 찌개의 맛은 육수에서 나온다. 어묵탕의 육수는 멸치, 다시마 육수를 사용한다. 다시마는 약불에서 끓이다가 2~3분 후에 건져내야 한다. 안 그러면 비린내가 난다. 육수는 다시멸치, 다시마, 대파 뿌리, 양파 작은 거, 베트남 고추, 명태 대가리, 무, 물을 넣어 끓인다. 하지만 어묵탕을 마트에서 사면 함께 동봉된 육수 진액을 사용한다. 본가에 방문하기 전날 동네 마트에 들러서 삼호어묵 중에 알록달록한 종류로 2봉지를 구입했다. 귀가해서는 냉장고 안을 쭈욱 살펴보고 무, 대파, 청양고추, 냉동만두, 냉동 새우를 꺼내서 조리하게 좋게 준비했다.
상계동 본가에서 대청소를 하기로 하고 점심 식사는 어묵탕과 해산물인 톳밥 비빔밥으로 정했다. 어묵탕은 내가 맡았고 톳밥 비빔밥은 어머님이 준비했다. 찬물에 미리 사각으로 썰어놓은 무를 넣고 동봉된 소스를 넣어서 끓이기 시작했다. 끓기 시작하면서 냉동 만두와 새우를 넣고 대파와 청양고추도 넣었다. 끓으면서 올라온 거품은 살짝 걷어서 버리고 미리 잘라놓은 어묵과 가락국수 사리를 넣어서 익혔다. 별도로 가져간 일본식 분말수프도 넣어서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맛과 가깝게 하려고 했다. 쌀을 씻어 톳을 압력밥솥에 넣고 톳밥을 지었다. 양념장으로는 달래 간장 양념을 만들어 싹싹 비벼서 어묵탕과 함께 게 눈 감추듯 먹었다.
맛난 식사 후에 어머니가 한 말씀하셨다. 아들이 작년에 요리학원을 다녔던 게 다 이유가 있었다고 하신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시던 아버지의 명맥을 이어가기 충분하다고 말이다. 아버지만큼은 아니더라도 자주 어머님께 정성스러운 음식을 만들어 드리고 함께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