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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Jan 23. 2023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100회 글쓰기(15회 차)

설날을 맞이해서 외가댁 식구들이 김포에 사시는 큰 외삼촌댁에 모이기로 했다. 큰 외삼촌은 현역에서 은퇴한 목사님이다. 일곱 형제들이 모두 모이지는 못했지만 대략 스무 명 정도를 근처 식당에 점심식사도 예약해 놓은 상태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설날에 큰 외삼촌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은퇴 후에는 댁에서 돌아가신 분(외조부모, 사돈어른, 부친, 작은 이모)들을 위해 예배를 드린다. 

김포에 사시는 큰 외삼촌댁에 모이기로 했다.


며칠 전부터 모이는 시간은 '10:30'이라고 단체 카톡에 공지가 되었다. 집에서 승용차로 이동시간만 40여분 정도 거리였다. 넉넉하게 9시 30분에 출발하면 여유 있게 도착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아내에게 미리 말해 두었다. 하지만 과연 그 시간에 출발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었다. 결혼하고 나서 한 번도 제시간에 출발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는 삼십분이면 간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혀 있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방배에서 김포까지 KTX도 아니고 그것도 초행길인데 말이다. 나는 '계획형 인간'이다 보니 시간관념에 민감해서 해서 웬만하면 지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다. 촉박해지면 마음도 불안하거니와 상대방을 배려한다면 도저히 늦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얼마 전에 읽은 글에서 누군가는 약속시간 1시간 전에 도착해서 그 근처를 구경한다는 것을 보고 정말 좋은 습관이라고 까지 생각했고 요즘은 따라 하기도 한다. 물론 결혼 초기에는 시댁 방문길에 출발예정시간이 늦어지는 아내에게 짜증도 내고 화도 냈다. 어떤 날은 너무 화가 나서 혼자 가버린 날도 있었다. 하지만 스무 해가 지나고 나니 화도 많이 누그러지고 짜증도 내지 않으려고 한다.그렇다고 내가 부처나 예수도 아니고 백 프로 허허 웃을 수는 없다. 그냥 밖으로 티 안 내고 속으로만 애를 태운다.




09:30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출발하기고 했던 시간에 아내와 딸은 출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나는 차분하게 얼른 준비하고 나오라고 말하고는 아들과 함께 아파트 주차장으로 나갔다. 아무래도 바로 출발할 거 같지는 않아서 아들 운전연수 겸 동네 지하철 역까지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십분 정도 생각했던 것이 이십 분 정도나 걸렸다. 


09:50 바로 출발하면 약속 시간 내에 도착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두 여자는 아직 나오질 않는다.


10:00 핸드폰으로 아내에게 전화를 거니 금방 나간다고 한다. 


10:10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며 출발했다. 짜증을 내지도 않았다. 그냥 과속을 했다. 


11:00 약속시간 보다 30분이나 늦게 도착해서 친척 어른들께 너무 미안했다.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그냥 그러려니 살아내야 하는 것인가.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그냥 그러려니 살아내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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