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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Jan 26. 2023

한파에 계량기가 터지다

100개 글쓰기(17회 차)

"딩동, 딩동~" 스마트폰에 관공서로 부터 경고 문자메시지가 계속해서 울렸다. 총 5군데(행정안전부, 서울특별시청, 강남구청, 동작구청, 관악구청)로부터 받았다.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겠습니다. 수도 계량기함은 보온재로 채우고, 수도 동파가 우려되는 주택에서는 수도꼭지를 조금 열어 동파를 방지하시기 바랍니다." 라는 한파 경계 문자였다. 살고 있는 아파트가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이다 보니 수도계량기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안전불감증은 전날 밤에도 여지없이 가동되었다. '올해도 또 수도계량기가 터지기야 하겠어?' 하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작년 한파에 수도계량기가 터지고 나서 방한용 솜을 하나 가득 계량기함에 쑤셔 넣어 두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 달 전에 새벽에 물이 안 나와서 드라이기로 녹여서 해동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또 얼면 녹이면 되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뜨거운 물이 안 나왔다. 느낌이 싸한 게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빨리 복도에 있는 수도계량기함을 열어 물이 새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세탁실 전원에 드라이기를 연결해서 온수배관 라인을 녹이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날 찬물 수도꼭지는 살짝 틀어 놓은 덕분에 냉수배관은 멀쩡했다. 온수배관이야 뜨거운 물이니까 얼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으로 틀어놓을 생각을 못했다.


온수배관을 녹이던 중 갑자기 계량기 옆에 설치된 감압밸브를  보니 위쪽부위가 깨져있고 안쪽에는 아직까지 얼음이 그대로 얼어있었다. 문제가 심각해졌다. 온수 배관이 녹기 시작하면서 여기저기 물이 새기 시작했다. 급하게 아파트 시설관리소에 연락해서 확인결과 수도계량기도 동파했고 감압밸브도 교체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수도계량기는 아파트 시설관리소에서 여분을 가지고 있어서 교체가 가능했지만 감압밸브는 주인세대가 직접 사 와야 한다는 것이다. 급하게 동네 철물점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갔더니 다행히도 비슷하게 생기게 있었으나 가져와 조립을 하려고 하니 맞지를 않는다. 사양이 다른 걸 잘못 구매한 것이다. 기존 것을 탈거해서 철물점에 다시 가서 확인해 보니 같은 제품이 없단다. 두 번째, 세 번째 철물점에도 없다.


철물점의 반경을 점점 넓히면서 찾아다녔다.  네 번째 철물점에 문을 열고 들어가 고품을 보여주니 잠시 기다려보라고 하더니 저 깊숙이 안쪽에서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하게 생긴 물건을 가져온다. 그런데 가격이 45,000원으로 예상보다 비쌌다. 그래도 찾은 게 어디냐 하는 심정으로  돈을 지불하고 나왔다.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수도계량기, 감압밸브를 교체하고 이중삼중으로 수도계량기함을 보온을 보강했다.




추운 날씨에 반나절이 지나고 나서야 비상상황이 종료되었다. 추운 날 수도계량기와 반나절 동안 씨름도 하고 동분서주 물건 사러 왔다 갔다 하고 나니 맥이 풀려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데 아내가 물끄러미 쳐다본다. '수고했다'는 말이라도 할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무심한듯 툭하고 한마디 던진다. "그래도 오늘 글 쓸 거 하나는 건지겠네"라고 말이다.

"그래도 오늘 글 쓸 거 하나는 건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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