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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Jan 31. 2023

어쩌다 인터넷 강의

100개 글쓰기(19회 차)

며칠째 스마트폰으로  녹음을 하면서 강의 연습을 한다. 오랜만에 화이셔츠에 넥타이까지 매고 검은 뿔테 안경을 끼고 실제 인터넷 강의를 하는 것처럼 목소리톤을 높이고 속도 조절도 해본다. 거울을 보니 모습이 우습다. 위에는 양복을 입고 아래는 츄리닝에  양말도 신지 않았다. 무슨 TV 개그프로에 나오는 출연자가 억지 웃음을 만들어내기 위한 어울리지 않는 복장 같다.


반년 동안 준비해 온 '도로교통 안전관리자' 수험서 마지막 4차 교정을 끝내고 원고를 출판사에 송부했다. 출판전 마지막 단계로 모의고사 특강을 동영상으로 찍는 것이 남아있다. 요즘은 대부분의 수험서에 QR코드를 통해서 저자의 영상을 시험 준비생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한다. 기본적으로는 수험서에서 글과 그림으로 지식을 전달하지만 추가적으로 저자의 목소리와 모습을 통해서 좀 더 생생한 정보를 제공한다.  

모의고사 특강을 동영상으로 찍기 위한 것이다.


자동차 관련 직종에서 30여 년간 회사와 집을 오가며 밥벌이에 매달리다  보니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다행히 직장생활 후반에 산학협력 차원에서 몇 년간 대학교 자동차과 학생을 대상으로 야간강좌를 진행했던 것이  촬영에 도움이 되었다. 그때 학교 강의스킬을 높이기 위해 개인적으로 6개월짜리 '주말 명강사 과정'에서 발표하는 방법을 학습하고 실습했다.


카메라 앞에서 떨지 않고 자신 있게 말을 할 수 있게 된것은 아무래도 그때의 경험 덕분이다. 그렇다고 무슨 내가 방송에 나오는 실제 명강사처럼  청중의 마음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어떠한  강의들을 맡게 되더라도 절대로 수죽들지 않고 잘해 낼 자신은 있다. 이번 수험서 모의고사 특강 동영상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준비를 했다.




특강 동영상은 공동저자인 후배와 과목을 나눠서 촬영하기로 했다. 오전에는 내가 먼저 '교통법규', '교통안전관리론'을 촬영하고 오후에는 자동차학과 교수인 후배가 '자동차정비'과 '자동차 공학'으로 마무리 하기로 했다. 촬영 장소는 이번 수험서를 기획한 용산에 있는 '골든벨 출판사' 건물 회의실에서 진행했고  촬영과 편집은 외부 전문 에이전시를 부르기로 되어 있었다.


당일 아침 나이 지긋해 보이는 촬영 기사님과 인사를 하고 명함을 받아보니 '교통환경신문' 대표이사 였다. 아니, 이게 웬일인가 싶어 물어보았더니 출판사 대표님과는 오랜 인연으로 가끔 촬영협조를 해주고 하필 신문사내 다른 직원들은 모두 바빠서 신문사 대표님이 직접 촬영을 도와주러 온 거였다. 갑자기 촬영 전문가보다는 교통 전문가로 보였다.


웬만해서는 긴장하지 않는 나였지만 자동차 산업계의 대선배 앞에서는 갑자기 양쪽 어깨 근육이 뭉쳐지면서 긴장이 되었다.  큐사인과 함께 촬영이 시작되고  그동안 학습하고 연습한 대로 목소리 톤을 높이고 말의 속도를 조절했다. 한 문제가 끝날대마다 촬영기사로 부터 긍정의 신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계속해서 오케이 사인을 주었다.

촬영기사로 부터 긍정의 신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원컷으로 오십 문제를 끝내지는 못했지만 두세 차례 쉬어가는 중에 목소리 톤과 강약 조절이 좋다는 평을 들었다. '뭐, 그렇게 칭찬할 일인가' 싶었지만 마음속으로는 갑자기 자신감이 용출하면서 딱딱했던 어깨근육도 부드러워졌다.  나머지 과목도 무리 없이 예정시간보다 일찍 끝났다. 연습할 때 친구로 부터 받았던 피드백이 표정이 너무 근엄하고 무섭게 보인다 해서 조금은 신경 써서 촬영했는데 어떻게 편집돼서 나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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