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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Jan 29. 2023

캠핑요리, 연어말이

100개 글쓰기(18회 차)

백패킹(산에 올라간 텐트를 설치하고 자고 내려오는 산행)을 다니면서 무거운 박배낭을 메고 산에 올라가는 것은 갈 때마다 힘들다. 여름에는 더워서 힘들고, 겨울에는 추워서 힘들다. 하지만 백패커들은 열심히 20kg짜리 배낭을 메고 산에 오른다.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저녁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먹는 저녁식사도 그 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쁜 현대일들은 한 끼 식사를 때우기 위해 때로는 회사 구내식당에서 때로는 도시락으로 십 분에서 많아야 이십 분 정도를 보낸다. 집에 와서는 학원 다느라고 얼굴도 보기 힘든 아이들과는 함께 저녁식사는 생각도 못하고 대충 혼밥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슬로우(Maslow)'의 욕구 5단계를 말하지 않더라도 식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자 기쁨이다. 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은 산 정상에서 함께하는 저녁만찬시간이다.




주말에 백패킹이 계획되어 있으면 며칠 전부터 무엇을 챙겨갈지 고민을 한다. 겨울철에는 어묵탕에 뜨뜻한 정종 한잔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거기다가 사이드 술안주로 '연어말이'까지 더한다면 겨울밤 쉘터(식사를 하기 위한 바람막이 텐트) 안의 감성은 바로 폭발한다. 백패킹을 가게 되면 각자의 필살기 요리를 준비한다. 나는 백패킹 모임을 쫓아다니면서 여러 가기 캠핑요리들을 배웠다.


새우감바스, 바지락 술찜, 단호박찜, 콘치즈, 오리훈제볶음, 순대볶음, 어묵탕 도 모두 캠핑선배들 어깨너머로 입으로 익히고 눈으로 익혔다.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은 '연어말이'이다. 어느 겨울날인가 누군가 연어 뭉텅이를 갖고 와서 나무 도마에 놓고 날 선 MSR 칼로 슬라이스를 치고 양파를 최대한 얇게 썬 채와 깨끗이 씻은 무순을 말아서 나무도와 위에 잘 말아서 차곡차곡 올려놓았다. 색감도 최고, 식감도 최고, 감성도 최고였다.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은 '연어말이'이다.


그날 이후로 몇 번인가 '연어말이' 따라 하기를 했다. 어떤 날은 감성 있게 결과물이 나오기도 했고 어떤 날은 연어가 잘 썰리지를 않아서 모양이 영 나오지를  않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트에서 마주친 연어 슬라이스는 나의 떨어진 자신감에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물론 연어를 써는 퍼포먼스는 없어졌지만 썰면서 발생하는 생선 살코기의 으깨짐은 피할 수 있었다. 마트에서 사간 슬라이스 연어를 나무 도마 위에 올리고 그 위에 양파채와 무순을 넣어서 돌돌 말았다.


분홍 빛깔의 말린 연어살 좌우로 무순의 파란 잎과 하얀 줄기 그리고 눈같이 흰 양파는 선배 백패커의 연어말이와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었다. 사케를 따뜻하게 데우고 텐트를 스치는 차가운 바람소리와 함께 가수 적재의 <별보러 가자>를 듣는다. 겨울밤은 또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 다 먹고 남은 '무순'은 버리기 아까워서 집에 가져가 간장, 식초, 올리고당, 고춧가루를 넣어 '무순무침'을 만들어 본다.

겨울밤은 또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


적재 <별보러 가자>

https://youtu.be/JLT8qOdpD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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