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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Mar 24. 2023

그 정도면 '약과'지

개성 모약과

대형 교통사고가 난 적이 있다. 삼십여 년 전 서울 동부간선도로 운전 중에 커브길에서 미끄러져 갓길 둑에 부딪히고 승용차가 전복되었다. 차량은 천장까지 눌려서 결국 수리를 포기하고 폐차되었다. 다행히 두꺼운 스키복을 입은 채로 안전벨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러지지도, 찢어지지도, 기절하지도 않았다.


어깨근육이 놀라서 며칠 동안 뻐근하고 몸 여기저기 멍이 들어 있기는 했다.  회사 동료들은 나에게 "차량이 부서진 정도에 비하면 몸이 입은 상처는 약과(藥果)다"라고 말했다. 그 이후로 과속을 하지 않는다. 특히 커브길에서는 반드시 속도를 줄인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나는 대한민국의 모범 운전자가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숭불정책'에 따라 제사상에도 어육을 올리는 것이 금지되었고 어육을 대신해서 꿀과 기름으로 만들어진 '유밀과'가 제사상에 올랐다. 그 때문에 '약과' 등의 과자문화가 잘 발달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밀가루와 꿀, 조청, 기름이 귀하고 가격이 높기 때문에 한동안 법으로 금지될 때가 있었다. 적발되면 곤장 80대를 맞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약과는 엄청나게 귀해서 뇌물로도 자주 사용되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서 '숭유정책'으로 바뀜에 따라 약과의 가치는 떨어져서 대감집에 뇌물로 값비싼 산삼이나 녹용이 아니라 '약과'가 들어오면 하인들이 별거 아니라는 의미에서 "이건 약과(藥果)네"라고 했다.




제사상에 올려지는 동그란 '약과(藥果)'는 제일 좋아하는 제사음식이다. 진득진득한 식감에 달짝지근하고 기름진 풍미는 시원한 수정과, 식혜와 함께 간식으로 먹기 시작하면 혼자 세네 개는 거뜬히 해치운다. 이제는 언제든지 동네 마트에 가면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낱개로 포장된 '약과'를 살 수가 있다.


캠핑을 갈 때, 크기가 보통약과의 1/4 크기인 미니약과를 자주 챙겨간다. 오늘 실습한 과제는 '모약과'이다. 밀가루에 참기름을 넣고 비빈 후 소주, 생강즙, 꿀을 넣고 반죽하여 네모지게 썰어 기름에 튀겨낸 후 '즙청시럽'에 담가 만드는 '유밀과'로 개성지방의 가정식 향토음식이다.  


밀가루 2컵에 후춧가루, 계핏가루, 소금을 섞어 채에 거른다. 참기름(3큰술 반)을 넣고 밀가루 알갱이에 코팅이 되듯이 손바닥으로 비벼주고 2번 정도 채를 통과시킨 후에 설탕시럽(3큰술 반), 소주(4큰술)를 넣어 반죽을 한다. 반죽은 평소 밀가루 반죽의 물렁거림과는 완전히 다르다. 전반적으로 뻑뻑하고 반죽 덩어리가 수시로 갈라져서 "망했다~"라는 소리가 머릿속을 맴돈다.


겨우 어르고 달랜 반죽 덩어리를 비닐봉지에 담아 숙성(20분)을 시킨다. 숙성하는 동안 즙청시럽(담갔다가 빼내는 시럽)을 설탕, 물, 조청, 생강을 넣고 약한 불에서 끓여 식힌다. 숙성 후에 밀대로 반죽을 밀고 잘라서 겹치기를 3회 정도 반복하고 틀로 찍어내어 튀겨(90도~150도)서 부풀어진 약과를  즙청시럽에 한 시간가량 담가둔다.


약과 고명으로 대추 껍데기와 해바라기씨를 올리고 잣가루를 뿌린후에 한 입 깨물어 본다. 전에 먹던 동네 마트 약과와는 식감, 맛, 향이 다르다.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계피, 생강 향은 기분을 들뜨게 하고 '겉촉속바'는 모약과에 빠져들게 한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느낌이다. 건강하고 정성이 가득한 요리는 삶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새로운 세상을 느끼고 있는 이 시간이 정말 소중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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