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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Mar 23. 2023

나는 '밀가루'다

 수제 칼국수

마이 네임 이즈 밀가루(My name is 'Mil-ga-ru'), 사람들은 나를 '밀가루'라고 부른다. 학교에서 부르는 이름은 '글루텐(Gluten)'이다. 얼굴이 둥글고 남들과 끈적한 관계를 유지하는 아버지 '글리아딘(Gliadin)'과 탄력적인 피부를 갖고 있는 '글루테닌(Glitenin)'이라 불리는 어머니 사이에서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에 태어났다. 선천적으로 내 몸이 물과 혼합되면 쫀득쫀득한 밀가루 반죽이 된다.


집에서는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다. 삼 형제 중에 중간인 나는 '중력분'이고 형은 '강력분', 동생은 '박력분'이다. 우리가 사용되는 용도는 다르다. 가장 범용으로 사용되는 나(중력분)는 칼국수면이나 만두피가 되고, 형(강력분, 글루텐 함량 13%이상)은 빵, 마카로니, 스파게티, 동생(박력분, 글루텐 함량 10%이하)은 튀김옷, 케이크, 쿠키, 도넛이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쫄깃해짐)은 달걀, 소금, 물, 우유이고 싫어하는 것(연화작용)은 지방과 설탕이다.



괴물에게 갑자기 납치된 나는  갑자기 채에 걸러지고 1컵(200ml) 정도가 덜어서 커다란 그릇에  담기고 미지근한 물(4 큰스푼, 60ml), 소금과 함께 반죽이 되었다. 괴물은 한참을 치데더니 비닐봉지에 넣고 이십분간 숙성을 시킨다. 저 멀리 냄비에는 멸치, 대파, 마늘, 양파가 보글보글 센 불에서 끓기 시작하더니 중불로 바뀌고 육수의 색깔이 투명색에서 황색으로 변하고 있다. 반대쪽 도마 위에는 애호박과 표고버섯이 흐르는 수돗물에 목욕후에 대기를 하고 있다.


괴물은 애호박(5cm)을 들고 돌려 깎기를 하고 채를 썰고 소금을 뿌려 접시에 재워두고 표고버섯은 물기를 완전히 제거하고 사선으로 저미고 다시 썰리고 진간장, 설탕, 참기름과 섞인다. 프라이팬에 식용유가 둘러지고 애호박, 표고버섯이 볶인다. 아마도 애호박과 표고버섯은  칼국수의 고명으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나는 비닐봉지에서 탈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혀 조리대 위에 내팽개쳐지고 커다란 나무밀대로 고문을 받기 시작했다. 손바닥 크기의 반죽 뭉태기는 밀대에 밀려 납작해졌다. 워낙 큰 힘으로 밀리다 보니 금세 도마 판때기 만하게 사이즈가 늘어나 커다란 타원형 모양이 되었다.  지저분한 바깥 부분은 칼로 도려내지고 타원형의 긴 쪽을 기준으로 덧가루를 맞으며 몇 차례 접히고 얇게(0.3cm) 칼질을 당한다.  


육수의 건더기는 채에 걸러 버려지고 육수(500ml)만 냄비에 담기고 그 속으로 나도 설설 히 풀리면서 '풍덩, 풍덩' 다이빙을 한다.  국간장과 약간의 소금이 추가되고 나의 살색이 반쯤 투명해질 즈음 면발이 건져 저서 국수그릇중간에서 정신을 가다듬니다. 냄비에 있던 육수가 내 위에 부어지고 그 위에 애호박과 표고버섯 그리고 실고추가 자리를 잡는다. 커다란 나무젓가락이 나를 들어 올려 괴물의 입속에 쑤셔 넣는다. "사람살려~, 아니 밀가루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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