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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Mar 30. 2023

내 밥상 위의 궁중요리

월과채

과연 우린 잘 먹고 잘살고 있는가?


서울에서 거주하고 근무하는 사십 대의 회사원 A 씨의 삼시 세 끼를 한번 보자. 아침을 챙겨 먹는 직장인은 의외로 많지 않다. 하지만 A 씨는 그나마 아침을 챙겨 먹는다.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먹거나 토스트와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후식으로 바나나 한 개를 먹는다. 회사에 출근해서는 오전 업무를 마치고 점심식사는 주로 구내식당에서 한다. 메뉴 선정에 고민할 필요가 없고 가격도 외부식당에 비해서 저렴해서 자주 이용한다.


식판에는 밥, 국 외에 4가지의 반찬을 놓는 자리가 있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상차림으로 보면 밥,국, 김치를 제외하면 3첩 반상이다. 퇴근해서 야근을 하면 근처 식당에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와 딸려 나오는 반찬 두세 가지로 저녁식사를 한다. 이때는 대략 1~2첩 반상이다. 팀회식이라도 있으면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고 치맥으로 저녁식사를 대신한다. 그렇게 이십 년 정도 하고 나면 남는 건 튀어나온 '똥배'와 만성질환 '성인병'뿐이다. 

 남는 건 튀어나온 '똥배'와 만성질환 '성인병'뿐이다.


과거에 비해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기는 했지만 의식주 중에서 '식' 만을 따로 보면 '건강하게 먹고 있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가 없다. 물론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언제라도 한식, 중식, 양식, 일식을 가리지 않고 배달앱을 통해서 초스피드 하게  주문 음식이 식탁 위에 배달된다. 시대가 바뀌고 음식문화의 패턴도 IT 발전과 더불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하루에 한 끼 중에 반찬 한 가지 정도는 임금이 먹던 궁중요리 반찬을 먹어보면 어떻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괜한 상상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왠지 '나비효과' 같은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저녁 밥상에 '월과채'를 턱 하니 올렸다. 조선시대 임금님이 먹던 12첩 반상은 아니더라도 그중에 한 가지였을지도 모를 궁중요리 '월과채'는 나의 저녁식탁에 변화를 주었다.

궁중요리 '월과채'는 나의 저녁식탁에 변화를 주었다.



월과는 '조선호박'을 말하며 중국 월나라에서 심은 열매라고 해서 월과(越果)라고 한다. 지금은 월과 대신 애호박을 사용하니 어찌 보면 '애호박채'가 더 맞는 이름이지만 아직까지도 요리의 이름은 '월과채'이다.  월과채는 호박에 양념한 고기와 버섯, 찹쌀부꾸미(찹쌀을 뜨거운 물로 반죽하여 기름에 지진 떡)를 섞어 만든 잡채형 나물의 일종으로 비슷한 음식으로는 중국의 고추잡채가 있다.


궁중요리에는 주로 소고기채가 사용된다. 월과채는 특이하게도 소고기를 잘게 다져서 조리를 한다. 찰부꾸미의 찰진 성분이 고기 부스러기들로 인해서 어느 정도 잘 융합될 수 있도록 한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요리가 시작되면 시간절약을 위해 제일 먼저 소금에 절일 것이 있는지, 숙성시킬 것이 있는지, 양념에 재워두어야 할 것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번 요리는 애호박을 소금에 절여야 하기 때문에 우선순위에 둔다.


애호박을 반으로 잘라 씨 부분을 파내고 0.3cm 두께의 눈썹모양으로 썰어서 소금에 절인다. 파, 마늘을 다지고 찹쌀가루는 6:1 기준(습식찹쌀가루 9큰술, 물 1+1/2큰술)으로 뜨거운물로 익반죽하고 비닐봉지에 잠시 넣어둔다. 느타리버섯은 데쳐내어 찢은 후 소금, 참기름, 깨소금으로 조물조물 양념을 버무린다. 표고버섯, 홍고추는 채를 썰고 소고기는 다져서 준비한다.  찹쌀반죽은 원통막대 모양을 만들어 등분해서 동전크기 만하게 만들어 팬에 구워낸다.


이때 팬의 열에 변색되지 않도록 구워준다. 이어서 호박을 물에 헹구고 물을 짜내서 팬에 볶고, 느타리버섯, 홍고추, 불고기 양념(간설파마 후깨참)한 표고버섯과 소고기를 순차적으로 구워낸다. 모든 재료를 큰 그릇에 한데 모아 '설설설' 무치고 참기름을 살짝 뿌리고 고명용 지단을 올려낸다. 호박의 아싹함과 찰부꾸미의 쫄깃한 식감이 한데 어울려 럭셔리한 궁중요리 한 가지가 완성되었다. 나는 오늘 '대한의 임금'이 되어본다.

나는 오늘 '대한의 임금'이 되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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