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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Apr 25. 2023

줄 맞춰 차렷, 화양적

화양적

"전체 차렷! , 여러분들은 이제 민간인이 아닙니다." 빨간 모자를 쓰고 군복을 입은 훈련조교들이 갓 입소한 빡빡머리 훈련병들에게 소리친다. 훈련소 정문 하나를 통과했을 뿐인데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한다. 온몸의 세포와 말초신경들은 곤두서고 근육들은 빳빳해진다. '차렷'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 척추를 곧추세우고 어깨를 펴고 주먹을 꼰 쥔 양손은 바지 재봉선에 같다 붙였다. 여기저기서 '퍽퍽~' 소리가 들리면서 몇몇 훈련생들이 배를 움켜쥐며 쓰러진다.

"전체 차렷~,
여러분들은 이제 민간인이 아닙니다."

꼬치에 일자로 반듯하게 매달린 화양적 사진을 친구에게 보냈더니 바로 답신이 왔다. '재료들이 군기가 들어서 줄 맞춰 차렷자세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한다. 갑자기 삼십여년 전 군대 입대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이상하게도 기억력이 점점 쇠퇴하지만 과거의 어느 순간은 송곳처럼 머릿속에 박혀서 선명하다. 의정부 306 보충대에 입소하던 날, 연병장에서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화양적은 재료를 양념하여 익힌 다음 꼬치에 꿴 누름적이다. 누름적은 산적, 지짐누름적과 더불어 전통방식의 3대 궁중 꼬치요리이다. 요리의 색감이 알록달록하다. 동서남북(파랑, 하얀, 빨강, 검정) 그리고 중앙(노랑)의 색이 모두 포함되어 오방색을 모두 갖추고 있다. 거기에 진한 갈색 소고기와 하얀 잣가루까지 더해  온 우주의 색을 담았다.


화양적은 소고기, 도라지, 표고버섯, 당근, 오이 등의 재료를 양념해서 익힌다음 색을 맞추어 꼬치에 꿴 적이다. 임금님의 수라상, 주안상, 백성들의 잔칫상에 즐겨 오르던 음식이다.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한글로 기록했다는 조선시대의 <음식방문(文), 1880년경>이라는 책에서는 화양적을 '화양누르미'라고 하였다.  화양(陽)이라는 말은 양기가 꽃처럼 피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화양(華陽)이라는 말은
양기가 꽃처럼 피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요리는 '겨데육주(겨자발효, 데칠 것, 육수 낼 것, 주재료)' 순서로 진행된다. 재료를 보니 데쳐야 할 도라지, 당근이 보인다. 데칠 재료가 보이면 냄비에 물을 올려 끓여 조리시간을 단축시켜야 한다. 도라지의 쓰고 아린맛을 제거하기 위해 그릇에 담아 소금을 뿌리고 손빨래하듯이 빡빡 문지른 후 적정한 크기(1cm x 6cm x 0.6cm)로 잘라 부드러워지도록 소금물에 담가둔다. 당근도 같은 크기로 잘라둔다.


둥근 오이는 세로방향으로 4 등분하고 씨 부분을 잘라내고 도라지와 같은 크기로 절단해서 소금물에 절인다. 끓는물에 아직까지 단단한 도라지와 당근을 넣어 데쳐내면 어느정도 부드러워 진다. 소고기와 표고버섯은 같은 크기로 잘라 불고기 양념(간설파마 후깨참)을 하고 계란지단을 붙여낸다. 보통 계란지단은 얇게 고명으로 사용되나 화양적에서는 주재료로 사용됨으로 3단으로 접어 두툼하게 두께를 내어야 한다.


재료가 모두 준비되면 팬에 오일을 두르고 볶아 내는데  순서는 깨끗한 순서대로 재료들(도라지, 오이, 당근, 표고버섯, 소고기)을 볶아낸다. 소고기는 길이방향으로 줄어들고 두께는 두꺼워지는 특성이 있음으로 처음부터 길이는 1cm 정도 길게, 두께는 조금 얇게 썰고, 팬에 볶을 때도 양쪽 끝을 젓가락으로 고정시켜 길이가 줄지 않도록 팽팽하게 눌러주어야 한다.


산적꼬지를 재료에 꿸 때에는 재료 끝에서 1cm 정도 여유를 두고 옆면 중앙을 찔러 살살 좌우로 회전시키면서 관통해야 한다. 색감을 보기 좋게 하기 위해 표고버석과 소고기는 띄우고 백지단과 황지단도 띄워서 배치한다. 보통 당근은 무르기 때문에 관통하다가 부서지는 경우가 많아서 제일 나중에 꼬치에 꿴다. 다 꿰고 나서는 재료 위, 아래의 튀어나온 길이는 칼로 절단하고 나무꼬지의 양쪽 끝도 1cm를 남기고 잘라내다.  


고깔을 뗀 잣을 부수어 고명으로 중앙에 뿌려주면 완성된다. 완성된 모습이 정사각형에 가까우면 한식조리기능사 시험 합격에도 가까워진다. 줄 맞춰서 차렷자세를 취하고 있는 화양적의 가지런한 모습이 피 끓는 젊은 시절의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파도가 몰아치는 어느 바닷가 펜션에서 고급진 화양적을 안주삼아 따뜻한 정종 한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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