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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Apr 16. 2023

떡을 치다

떡 제조기능사

가수 박진영의  <Fever, 2019>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에 보면 마당쇠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질척한 떡이 잔뜩 묻은 방아를 내리치고, 그 옆에 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가씨가 놀란 표정을 하고 있다. 노랫말은 남녀 간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노래가 그다지 흥행을 하지 못했지만 뮤직비디오에 나온 그 스틸 사진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과거 한때 인기몰이를 했던 국내 성인 영화인  <변강쇠, 1986년>, <가루 치기, 1988년> 등의 영화에서도 남녀 간의 은밀한 사랑은 곡식을 찢는 물레방앗간 뒤에서 이루어진다.  '떡'이라고 하는 것이 노래나 영화 속에서 은밀하게 음란한 뉘앙스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 오랫동안 일상속에서 우리와 함께 했다.




'떡(rice cake)'은 곡식가루를 시루에 찌거나 삶아 모양을 빚어 먹는 음식이다. 주로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에서 먹는 음식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라고 추정한다. '밥'이 먼저인지 '떡'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고 어느 것이 주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밥이 주식이 되었고 떡은 간식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떡(rice cake)'은 곡식가루를
시루에 찌거나 삶아 모양을 빚어 먹는 음식이다.


나의 최애 떡은 '약식'과'가래떡'이다.  어릴 때 어머님이 집에서 만들어준 달착지근하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까만색 찰진 약식이 생각나서 요즘도 가끔 시장 떡집을 지날 때면 그냥 지나치질 못한다. 등산로 초입에서 겨울철 출출할 때 석쇠에 구워진 노릇노릇한 가래떡을 뜨끈한 어묵국물과 함께 먹고 산행을 시작하면 속이 든든하다. 산행 중에 찰진 가래떡을 기름장 발린 바싹한 김에 돌돌 말아먹어도 별미이다.




'떡 제조 기능사'를 취득하기 위해 간식으로만 여겼던 떡을 공부하다 보니 떡의 종류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생전 들어보지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떡들이 너무 많아서 필기시험을 준비하는데 힘이 들었다. 제일 좋은 방법은 하나하나 오감을 통해서 느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쉬운 데로 인터넷 사진과 종로에 있는 '떡 박물관' 방문으로 대신했다.


떡을 구분하면 크게 4가지이다. 찌는 떡(백설기, 켜떡, 빚어 찌는 떡, 부풀려서 찌는 떡), 치는 떡(가래떡, 인절미, 절편, 개피떡, 단자), 지지는 떡(화전, 부꾸미, 주악), 삶는 떡(경단)으로 구분된다. 떡은 절기마다 먹는 떡의 종류가 달랐고  통과의례 때마다 다른 종류 떡을 먹었다. 물론 최근에는 점점 더 전통문화가 사라지고 있어서 떡을 예전처럼 많이 먹지는 않는다.


왠지 전통문화인 '떡' 이야기를 꺼내면 꼰대로 여겨질 수 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떡 공부가 나 스스로를 뿌듯하게 만든다. 필기시험을 통과해서가 아니라 전통문화를 조금이나 이해했다는 자기만족이 아닌가 싶다. 실기시험을 위한 떡 조리과정 실습이 기대된다. 출근길,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떡집 앞을 지날 때 맡는 떡의 진한 향기가 허기를 느끼게 한다.


출근길,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떡집 앞을 지날 때 맡는 떡의 진한 향기가 허기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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