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곳이다. 나는 살면서 몇 번이나 이사를 했을까. 부모님과 살면서도 잦은 이사를 했고 결혼을 하고서도 몇 차례 이사를 했다. 대략 10번은 넘는 거 같다. 그중에서 제일 기억 남는 곳은 역시 회현동 제2시민아파트(일명, 시범아파트)이다.
1970년에 5월에 준공되어 현재는 52년 된 아파트가 되었다. 현존하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고층 아파트가 되었다. 남대문시장과 남산 중턱 사이에 위치한 이곳은 조선시대에 남산골 샌님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시대가 흘러서 남산의 달동네로 변했으며 서울시에서는 판자촌을 철거하고 최신 아파트를 건설했다. 당시 1970년 초에 마포 와우 시민 아파트가 부실공사로 무너지고 나서 그 이듬해에 김현옥 서울시장이 "앞으로 아파트는 이곳(회현 시민)을 시범 삼아서 튼튼하게 지으라"라고 해서 '시범아파트'라고 불리었다.
회현동 시범아파트 520호는 내가 살았던 곳이다. 대략적으로 국민학교 입학 즈음인 1974년부터 살기 시작해서 군대 제대하는 1988년까지 살았으니 거의 14년 동안 생활했던 곳이다. 초창기 입주자들은 주로 방송국 PD, 중앙정보부 간부들, 연예인들, 남대문시장의 부자 상인들이 입주하여 서울시민들의 로망의 아파트였다.
오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낡고 노후와 되어 레트로의 분위기가 연출되는 영화 장면으로 자주 등장한다. 영화 <친절한 금자 씨>, <추격자>, <주먹이 운다> 와 mbc <무한도전>, 최근에는 넷플릭스 <스위트홈>에서도 촬영지로 사용되었다.
유년 시절부터 청년 시절을 보낸 추억이 속속히 박혀있는 장소이다. 방과 후에는 동네 아이들과 '다방구' 와 '술래잡기'를 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해가 질 때까지 뛰어다는 곳이었다. 10층짜리 건물은 내부가 마치 미로같이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다.
출입구가 1층에 3군데, 3층에 1군데, 6층에 2군데, 7층에 1군데 총 7군데나 있는 복도식의 특이한 T자 형 구조로 되었었다. 중간중간에 출입구가 있는 이유는 아파트 한쪽 면이 옹벽이자 야외 마당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조가 복잡한 만큼 아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놀이터였던 것이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내가 느끼던 시범 아파트에 대한 감정에는 변화가 생겼다. 7살짜리 소년이 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쾌적하고 안락했던 곳이었지만 21살짜리 청년이 살기에는 부대끼는 곳이 되었다. 어린 시절의 친구들은 이미 다들 이사를 갔고 아파트 밖의 서울 환경은 계속 발전하고 변해갔다.
상대적으로 아파트는 점점 노후화되었고 결국은 내가 군대에 복무하는 동안 부모님은 상계동으로 이사를 하셨다. 전에 비해서 훨씬 더 고층 아파트에 평수도 훨씬 넓은 곳이었다.지금은 분가해서 강남의 방배동에서 15년째 살고 있다. 아이들도 10대 초반에서 20대 중반이 되어 감정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