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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May 05. 2022

부친의 양주5병

아버지의 양주

금요일 저녁 상계동 본가로 향했다. 회사가 있는 경기도 용인에서 상계동 본가까지 금요일 퇴근 정체를 뚫고 3시간 만에 도착했다. 원래는 1시간 30분 정도 걸렸을 테지만 금요일 퇴근길이다 보니 오후 8시경에서야 상계동 본가에 도착했다. 주말에 자꾸 일이 생겨 얼마 전에 혼자가 되신 어머니가 적적하지 않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본가에 가서 잠을 자면 어떻까 해서 결정한 일이었다. 원래는 오후 6시 30분경에 도착하면 함께 추억의 식당에 가서 외식을 할 계획이었으나 도착시간이 점차 늦어짐에 따라 그냥 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부친은 생전에 술을 전혀 못하셨다. 조금만 드셔도 얼굴이 빨개지셔서 아예 술을 멀리하고 한 평생을 사셨다. 내 기억으로는 할아버지는 술을 많이 드셨다. 할아버지는 반주로 소주 한 컵씩은 마신 걸로 기억된다. 그런 할아버지의 유전은 한 대를 걸러 나에게 왔다. 나는 술을 즐겨 마시는 타입니다. 본가가 중계동 은행사거리 근처에 있을 때는 사거리 상가 뒤편 1층에 있던 '돼지네 포장마차'이라는 곳을 어머니와 함께 자주 이용했다. 그 집에서 먹던 홍합탕은 일품이었다. 사실 그날은 30년 만에 그곳을 다시 방문해 보고 싶었었는데 아쉽게도 다음으로 미루었다.


본가에 도착하니 거실 한쪽 편에 양주 5병이 나란히 있었다. 아니 웬 양주병인가 여쭤보았더니 부친께서 가지고 계셨던 양주라고 하시고 나보고 집에 가져가서 마시라고 하신다. 아니 무슨 술도 안 드시던 분이 양주를 보관하셨단 말인가. 갑자기 3달 전에 영면하신 부친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식구가 많지 않아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고,결혼을 하고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세 식구는 축배를 들었다. 모친과 나는 술을 마시고 부친은 물로 대신했었다. 앞으로 부친이 남겨주신 양주 5병은 우리 집안의 기쁜 일이 생기면 축배 주로 사용해야겠다.


모친의 세례명은 '로사'이다. 부친은 '베드로', 나는 ' 크리스토폴'이다. 아주 오래전에 모친은 기독교에서 천주교로 개정을 하셨다. 물론 부친과 나는 자동적으로 천주교 교리 공부를 하고 어렵게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금요일 출근길에 본가에서 하루 묵을 생각을 하고 옷가지와 함게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를 챙겨 넣었다. 금요일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좀 쉬다가 모친이 냉이를 다듬기 시작하시고 나는 천주교와 관련이 있는 <미카엘라> 편을 낭독했다. 어릴 적에 모친은 나에게 옛날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왠지 오늘은 어린 시절의 은혜를 모친에게 갚아드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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