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탁악세에서 이러한 인정미를 맛보지 못 하고서야 무슨 맛으로 살아갑니까.'는 <한용운, 흑풍 中에서>이라는 장편소설에서 나오는 문구이다. 1936년에 조선일보에 연재되었으니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사람들은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있음을 한탄한다. 그러니 백 년이 지난 지금은 오죽하겠나 싶다. 아침 출근길에 인터넷 뉴스 클릭하다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 '어떻게 그런 일이'라는 생각들이 수시로 든다.
세상은 점점 빠르게 발전하고 경제는 윤택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 간의 '인정미'는 과거보다 줄어들고 있음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공간 곳곳에서 아직까지 따스함을 느끼는 것은 다행이다. 유가족을 위로해 주는 연도 의례 봉사를 하는 노모나, 사회 소수자를 돕기 위해 여러 곳에 기부를 하는 친구, 그리고 수많은 봉사자들을 볼 때 아직 주변에 인정미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인정미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막연하게 생각하던 '떡'은 크게 만드는 방법에 따라 4가지로 분류된다. 찌는 떡, 치는 떡, 지지는 떡, 삶은 떡이다. '인절미'는 치는 떡에 속한다. 치는 떡은 쌀 또는 쌀가루를 시루에 찐 다음 절구나 안반에 놓고 차지게 친 떡이다. 어린 시절부터 떡에 대한 이미지는 절구, 떡메, 건장한 청년이 연상된다. 그때 안반에 올려진 떡이 바로 '인절미'이다.
인절미는 차진 떡이라 잡아당겨 끊는 떡이라 인절병(引切餠), 인절미(引截米)라고도 불렸고 임 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만들어서 '임절미'하고 부르다가 '인절미'로 바뀌었다는 유래가 있다. 인절미의 찰진 식감 덕분에 찰떡처럼 붙으라고 각종시험에 합격 떡으로 선물되고 갓 결혼한 부부는 찰떡같이 오래 살자는 의미로 함께 나누고 잔치나 제사에 빠지지 않고 오른다.
찹쌀가루 500그램으로 24개의 인절미를 만드는 것이 떡 제조기능사의 1시간짜리 과제이다. 찹쌀가루에 소금(찹쌀가루의 1%, 5그램)과 물(2큰술)을 넣고 손으로 충분히 비벼서 습기가 골고루 섞이게 한 다음 설탕(찹쌀가루의 10%, 50그램)을 섞어준다. 찜기에 젖은 면포를 깔고 나중에 반죽이 잘 떨어지게 설탕을 바닥에 골고루 뿌려준다. 찹쌀가루를 한주먹씩 살짝 쥐어 면포 위에 올리고 30분 정도 찐다.
쪄낸 반죽은 소금물(소금 5그램, 물 4큰술)을 골고루 바른 스텐볼에 담아 절구공이로 반죽이 꽈리모양이 될 때까지 친다. 어느 정도 찰기가 생기면 식용유를 바른 비닐에 올려 사각형 모양(16cm x 12cm x 2cm)을 잡고 찬 행주를 감싸 열기를 식혀준다. 도마에 콩고물을 뿌리고 칼이나 스크리퍼로 24등분으로 동일크기로 자르고 콩고물을 골고루 묻혀서 완성접시에 담아내면 끝이다. 접시가 작아 인절미가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