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는 항상 찬밥이 있다. 지금도 그렇고 사십 년 전에도 그랬다. 형제가 많은 집 밥상은 마치 전쟁이라도 치르듯이 맛난 반찬을 서로 먹기 위해 눈치를 보며 빠르게 밥을 먹는다. 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면 어머니와 단둘이서 또는 혼자 먹는 경우가 많았다. 그 시절에 '혼밥'이라니. 아버지는 직장에 출근하시고 어머니는 가게에 나가시면 집안에는 정적이 흘러 항상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밥을 먹곤 했다.
밥때가 되면 냉장고를 열어 찬밥을 꺼내서 고민을 한다. 이걸 비벼먹을까, 아님 볶아먹을까.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냉장고 안에 보이는 반찬들을 넣고 쓱쓱 비벼서 비빔밥을 먹거나, 프라이팬에 버터를 넣고 김치를 잘게 썰어 밥을 볶아서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조용히 꼭꼭 씹어 먹었다. 물론 지금도 주말아침이면 찬밥을 찾아 볶음밥을 만들어 먹는다.
이걸 비벼먹을까, 아님 볶아먹을까.
중식조리기능사에 출제되는 20가지의 요리 중에 유일하게 만들어본 적이 있는 요리가 '새우볶음밥'이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 따라 하는 요리실습시간에도 완성된 모습이 요리사부의 시범요리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집에서 만들어 먹을 때야 대부분 볶고난 프라이팬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각자 접시에 덜어먹지만 중식시험에서는 완성그릇에 봉곳하게 먹음직스럽게 담아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별도의 밥공기나 국그릇을 활용한다.
국그릇 안에 잘 익은 빨 안 간 새우를 바닥에 깔고 스크램블 된 노란색 계란과 싱싱하게 보이는 파란색 청피망 조각들을 옆에 뿌린다. 그래고 그 위에 볶은밥을 올려서 수저로 꾹꾹 눌러준다. 그리고 그 위에 완성접시를 거꾸로 올려놓고 180도 뒤집고 살짝 국그릇을 들어서 떼어내면 국그릇 바닥에 깔았던 재료들이 완성접시의 위쪽에 드러나며 플레이팅이 완성된다.
새우볶음밥의 최대 난이도는 밥 짓기이다. 중식시험이 시작하고 나서 10분이 지나면 스스로 포기하고 퇴실하는 사람들이 있다. 밥을 태운 수험생들이다. 밥을 짓는 동안에는 최대한 밥짓기에 집중해야 한다. 제공받은 불린 쌀을 동량 또는 한두 스푼 정도 덜어낸 물로 밥을 지은 후 미리 접시에 담아 식용유를 살짝 섞어 식혀둔다. 식용유를 넣는 이유는 나중에 밥을 볶을 때 밥알이 더 잘 볶아지기 위해서 이다.
새우 등 쪽의 내장을 제거하고 채소(대파, 당근, 청피방)는 0.5cm 주사위 모양으로 잘라 준비한다. 팬에 볶는 순서는 새롭게 바뀐 시험 요구사항에 따라 달걀, 밥, 채소, 새우 순으로 볶으면서 소금과 흰 후춧가루로 간을 한다. 이때 흰 후춧가루가 아닌 조리시험 테이블에 비치된 검은 후춧가루를 넣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릇에 담아내면 먹음직스러운 새우볶음밥이 완성된다. 완성된 새우볶음밥 위에 케첩으로 어설픈 하트모양을 만들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