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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Sep 25. 2023

여자 열명에 남자 한 명

초등학교 조리실

하루의 일과는 새벽부터 시작된다. 당일에 사용될 식재료들은 새벽 6시부터 조리실 문앞에 도착한다. 식재료를 받기 위해 새벽당번을 순번제로 운영한다.  평소보다 한시간 정도 일찍 출근한 조리원이 식재료를 체크하고 조리준비를 하다 보면 나머지 조리원들이  출근을 한다. 공식적으로 업무가 시작되는 시간은 7시 반이다.


급식실 안쪽에  락커룸을 겸한 휴게공간이자 회의공간이 있다. 대략 5평 남짓하다. 모든 조리원이 오밀조밀 둥글게 앉으면 옆사람 어깨가 맞닿을 정도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친밀해질 수밖에 없는 공간구조이다. 그 여성전용공간에 유일한 남자인 내가 끼여 있다. 처음 며칠은 낯설었지만 한 달 정도가 되니 이젠 익숙하다.


아침에 옷갈이 입고 휴게실에 합류할 때 문 밖 오 미터 전방에서 "들어가도 되나요?"라고 외친다. 그러고 나서 "들어오세요."라고 방 안에서 대답이 들려오면 들어간다. 점심식사 후 휴식시간이나  종례 때도 마찬가지 절차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여성선배들도 남자동료가 익숙하지 않아서 상의 유니폼을 훌러덩 벗고 있다가 "어그머니나~" 하고 깜짝 놀랄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 밖 오 미터 전방에서
"들어가도 되나요?"라고 외친다.




아침조회시간에는 주로 그날 메뉴에 대해서 선임조리사가 주의사항을 전달하기도 하고 전날 배식된 음식에 대한 피드백을 전달하기도 한다. 조회가 진행되는 동안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가져온 간식을 먹기도 한다. 전직장에서 아침마다 팀장들 불러놓고 경직된 분위기에서 스트레스 팍팍 주던 아침미팅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회의 테이블은 방바닥으로 바뀌었고 회의 참석자들이 올(all)남자들에서 올 여자(all)들로 바뀌었다.


남자들끼리는 아무리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해도 잘 안된다. 하지만 여자들이 절대다수인 곳에서는 그냥 분위기가 부드럽다. 물론 유일한 남자인 나의 착각일 수도 있다. 여성 동료들 간의 뭔가 보이지 않는 감정선들이 교차하기는 한데, 정확하게 파악은 안 되기 때문에 그냥 부드러운 분위기라고 퉁쳐서 얘기하고 싶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교차되는 감정선을 이해하는 능력이 나에게도 생길 거라 믿는다.




음식을 조리하는 일은 몸을 많이 쓰기 때문에 업무시작 전에 하는 '아침제조'는 필수이다. 스트레칭을 통해 온몸의 세포들을 깨운다. '일어나라 나의 근육들이여! 오늘도 힘찬 하루를 보내보자.' 머릿속에서 주문을 외워본다. 팔과 다리의 근육뿐만 아니라 손목, 발목, 허리의 근육도 쭉쭉 늘여준다. 체조를 하고 나면 몸이 개운하다.


1,500명이 먹을 점심식사 조리가  시작되면 11명의 조리원들은 정신없이 움직인다. 각자의 맡은 업무가 다르긴 해도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마치 축구에서 수비수와 공격수가 연결되어 움직이듯이 밥과 반찬들은 만들어지고 정오가 되기 전까지 각 반에 배식되는 캐리어에 올려진다. 급식실안에서 오전, 오후를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언제 하루가 지났는지 모를정도로 '~'하고 지나간다.


입사한지 한달만에 환영회식자리가 열렸다. 일이 끝나고 좀 이른시간에 회식장소에 도착해서 주문을 하고나자 다른 손님이 하나둘씩 들어온다. 테이블3개를 차지한 우리는 역시나 여자 열명 남자 한명이다. 왠지 다른이들이 흘깃흘깃 우리 테이블 쪽을 쳐다보는 느낌이다. 조리실안에서는 느끼지못한 '청일점'의 쑥스러움이 느껴온다. 식사를 마치고 이동한 카페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그래도 난 행복하다. 매일 꽃밭에서 일하니 어찌아니 행복하랴.'

조리실안에서는 느끼지못한 
'청일점'의 쑥스러움이 느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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