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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Aug 22. 2023

신입 조리원, 잘할 수 있을까

초등학교 급식 조리실무사

우연한 기회에 친구 추천으로 읽은  <달과 6펜스, 1919년, 서머싯 몸>이라는 책에서 남자주인공(스트릭랜드)은 마흔 중반의 나이에 평생 근무하던 증권사를 그만두고 돌연 '화가'의 길을 선언하고 가정까지 버리면서 홀로 새로운 삶에 뛰어든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소망했던 꿈(달)을 억누르면서 물질(6펜스)을 추구하면서 살아가지만 늘 잠재의식 속에서는 잊고 살아가는 꿈을 그리워한다.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급격한 변화는 아니지만 나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처음에는 직장 다니면서 취미로 시작한 주말요리교실이 퇴직을 하고 나서는 새로운 삶을 위한 돌파구가 되었다.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기술교육원에서 5개월 동안 조리과정 마치고 조리기능사 자격증 취득과 함께 서울시 교육청 소속의 조리실무사 채용시험에 최종합격했다.




'조리실무사'는 새로운 길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30년을 자동차 산업분야에서 근무했다. 작년 말 외국회사의 자동차 센터 책임관리자를 끝으로 이제는 또 다른 새로운 삼십 년을 시작하려고 한다. 문득문득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는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I can do it'이라는 주문을 속으로 계속 되새긴다.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요즘 어머니의 새벽기도 주제는 '아들의 새로운 직업'이다. 오랫동안 사무실에서 펜을 굴리던 아들이 앞으로 주방에서 팬을 돌릴 생각을 하니 안타까워하시면서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매일 기도하신다. 장모님은 '요리사는 폐암에 잘 걸린다'는 소리를 어디선가 들으시고 아직 시작도 안 한 '학교 급식소'를 그만두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다. 주변에서 걱정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또 주문을 외운다. 'I can do it'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입사할 조리실무사입니다."

초등학교를 배정받고 학교 영양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떨리는 마음으로 입사 신고전화를 했다. 상대방은 '학교 급식소 경험이 없는, 중년의 남자 조리실무사'라는 나의 정체를 알고는 당황해한다. "예, 여기는 모두 10명의 여성 조리원들이 근무 중입니다. 탈의실, 샤워실, 휴게실은 어찌할지 학교와 상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입사할 조리실무사입니다."


영양사의 말에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물론 남자가 많이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최소한 1명 정도는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나는 중학교도 남자만 다니는 중학교, 고등학교도 남자만 다니는 고등학교, 전공도 남자들만 공부한 기계공학과, 직장도 여자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자동차 정비센터에서 남자 정비사들과 근무했다.


거의 평생을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곳에서 살았는데, 이제부터는 여자들만 있는 낯선 근무환경이라고 생각하니 또다시 걱정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쩌면 운명의 신이 새로운 삶을 살아보라는 '인생의 선물'이 아닐까 하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기로 했다.


그래도 입사일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초조해지고 설렌다. 마치 30년 전에 사회에 첫발을 내 딫었던 사회초년생의 느낌이다. 이런 느낌만으로도 나는 축복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며칠간 자기 전에 거울 보면서 계속 외쳐야겠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사진] (좌)사전 직무교육 교재   (중) 입사전 온라인 교육   (우) 입사전 집합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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